• 최종편집 2022-08-16(화)

이재학의 독백11 - 어머니 아버지 감사합니다

해방 전에 태어나 대한민국을 오늘의 반석위에 올려놓으려 고생하신 어머니 아버지 감사합니다.

댓글 0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밴드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기사입력 : 2022.05.29 10:14
  • 프린터
  • 이메일
  • 스크랩
  • 글자크게
  • 글자작게

코로나로 만남을 건너뛰었던 노교수님을 뵈었다. 교수님의 연세가 88세이시다. 학교를 졸업하고 일 년에 한두 번 어느 해는 서 너 번 만남을 이어온 게 어느덧 삼십년이 넘었다. 이번 만남의 화제는 단연 건강이었다. 노교수님도 구순을 바라보니 하루가 다르게 건강이 안 좋아지신다 하고, 자리에 함께 한 제자들의 나이도 육십 전후니 공감하는 주제였다. 여기에 코로나를 겪으며 알게 된 우리나라의 의료체계의 우수성과 우리나라의 발전상으로 대화가 이어지니 노교수님은 당신의 노후에 우리나라가 경제 문화적으로 세계를 선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게 감개무량하다고 했다.

 

noname01.jpg


과거 어느 시점 오늘과 같은 만남 때 노교수님이 당신의 유학시절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1960년대 초반에 독일로 유학을 떠난 교수님은 몇 명 되지 않는 한국유학생들이 독일의 대학에서 가장 부러워했던 건 필리핀유학생이었다고 했다. 당시에도 같은 아시아국가 출신의 유학생이지만 일본유학생들은 한국유학생들이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잘 사는 나라의 유학생이었기에 부러워할 대상조차 되지 않았고, 그나마 만만한 게 필리핀유학생인데 그들도 우리나라보다 몇 배는 더 잘 사는 나라의 국민이었다고 했다. 한국유학생들이 모여 맥주라도 마시는 날이면 주변의 필리핀유학생들의 여유로운 모습을 보며 한 없이 부러워했다고 했다. 그때 한국유학생들은 우리 살아생전에 우리나라가 필리핀만큼만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들을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유학생들은 대한민국을 필리핀만큼 잘 사는 나라로 만들기 위하여 정말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고 했다. 이런 말을 하시며 노교수님은 우리나라가 지금 필리핀 보다 몇 배가 아니라 몇 십 배는 잘사는 나라가 된 게 놀라울 뿐이라며 감격해했다. 오늘 노교수님의 표정이 몇 년 전 보았던 표정과 똑 같았다.

노교수님과의 만남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노교수님과의 대화 중에 했던 감사합니다란 단어를 떠올렸다. 그리고는 지금 대한민국의 국민이 누리는 경제 문화적인 번영과 행복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수렁에서 벗어나려 이를 악물고 노력한 선배님들의 땀방울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해방 전에 태어나 대한민국을 오늘의 반석위에 올려놓으려 고생하신 어머니 아버지 감사합니다.    

 


이재학2.jpg
이재학

마라톤을 하면서 인생을 긍정의 눈으로 보는 법을 배우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마라토너/부천복사골문학회회원/부천작가회의회원/부천수필가협회회원

소새울 소통미디어 협력단 대표/마을 신문 ‘부천 소새울에 산다’ 발행인

저서: 나는 마라토너다

       길에서 다시 찾은 행복마라톤

       황소도 말처럼 뛰나

      엄마가 치매야     

태그

전체댓글 0

  • 36264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이재학의 독백11 - 어머니 아버지 감사합니다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