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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머무는 세상/정현우

유네스코문학창의도시 기념기획/ 홍영수 시인의 부천의 문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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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2.06.19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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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10월 부천시는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유네스코문학창의도시로 지정되었습니다. 유네스코문학창의도시 지정 1주년을 맞은 2018년 10월부터 <부천 시티저널>에서는 홍영수 시인의 "부천문인들 문학의 향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내가 머무는 세상/정현우

 

 

길을 걷다가

문득 돌아보니

누군가 따라 걷고 있습니다.

 

고개를 숙여

발끝만을 바라보며

상념 가득한 모습이 참으로

나를 닮아 있습니다.

 

양지쪽 흰 눈은 파르라니

몸을 녹이고

애써 바라본 하늘은 삼킬 듯

나의 몸을 파랗게 물들여 갑니다

 

함께 걷던 그도 간데없고

나도 어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런데도 돌아가려니

어디로 얼마만큼 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눈이 녹으면

새싹이 돋아나고

꽃이 피어나는 곳

 

파란 하늘과 또 다른 내가 있는

내가 멈춰 서 있는 이곳이

내가 돌아갈 곳이고

 

또 나아갈 곳이라는 것을

못내 인정해야만 할듯싶습니다.

 

가슴 가득 들여 마셨던

맑은 공기는 가슴에서

입술로 입술에서 눈으로 전해져

맑고 따뜻한 세상을 바라볼 수도

말할 수도 있을 것만 같습니다.

 

내가 머무는 세상이

가장 행복한 세상일 테니까요.

 

 

시낭사(시를 낭송하는 사람들) 대표

 

안개 길.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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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사물에 대한 직관과 더불어 많은 의미를 시어로 응축하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논리적 사고보다는 단순하면서 순수한 사고를 해야 한다. 헤겔은 서정시의 내용은 시인 그 자신이다라고 했다. 그렇듯 시제의 <내가 머무는 세상>에서 펼쳐진 내용을 보면 작가는 시적 화자를 내세워 작가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1연에서의 문득이라는 시어를 보자. ‘문득은 의도를 가지고 뒤돌아보는 게 아니라 우연히 뒤를 돌아본다는 의미이다. 도연명 <음주> 5에서의 悠然見南山(유연견남산: 유연히 남산을 바라보누나)“유연히와 같은 맥락이다. 전혀 의도하지 않은 뒤돌아봄인 것이다. 그 순간 상념 가득한 모습이 참으로/나를 닮아있습니다라고 하는 것은, 화자 자신의 또 다른 이름인 것이다.

 

3연에서 애써 바라본 하늘은 삼킬 듯/나의 몸을 파랗게 물들여 갑니다는 하늘이 화자를 삼켜 채색시킨 게 아니라 화자 자신이 바라본 하늘에 스스로 물들어가는, 대나무를 그리려면 대나무 속으로 들어가야 하듯것과 같이 자연과의 합일하는 화자의 순수 자연관을 읽을 수 있습니다. 길을 걷다 돌부리를 만나면 디딤돌로 만들면서 함께 걷던 그도 간데없고에서 보듯 인생사 오고감에 초탈한.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의 순리를 이미 터득하고 있다.

 

이것은 평소 작가의 자연 순응적이고 자연 친화적인 삶의 자세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러면서 4연의 그런데도 돌아가려니/어디로 얼마만큼 가야 할지/모르겠습니다.”라고 한다. 푸르스트의 시 아직도 잠들기 전에 갈 길이 조금 남아 있다.”는 시구가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 돌아 가자꾸나/고향 전원이 황폐해지는 데 어찌 돌아가지 않으리로라는 <귀거래사> 또한 함께 생각게 한 시구이다. 이렇듯 시상의 전개가 자연과의 교감 속 인간의 본향인 자연의 자궁에 대해 동경을 하고 있다.

 

사람에게는 또 하나의 또 다른 자아가 있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고 생각하고 느낄 수 없이 내 안에 존재한다. 7연의 파란 하늘과 또 다른 내가 있는에서 보듯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멈춰 있는 곳이 돌아갈 곳이고, 나아갈 곳이고, 그곳을 못내 인정해야만 할듯싶습니다라면서 읊조리고 있다. 그곳이 이니스프리인지 유토피아인지, 무릉도원인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왜냐면,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이 그러한 곳이기에 그렇다.

 

모든 사람의 내적 성찰의 밑바닥에는 자신을 응시하면서 뒤돌아보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용서와 화해 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9연의입술로 입술에서 눈으로 전해져”, “맑고 따뜻한 세상을 바라볼 수도/말할 수도 있을 것만 같습니다.”와 같이 말입니다. 감동은 기교가 아니라 진실에서 나온다. 이 시를 보면 함축적이기보다는 조붓한 숲속을 거닐다 만난 깊은 산골의 옹달샘 물맛이요 광천수 물맛이다.

 

내 안의 나를 너무 밖으로 내보내지 말자. 그래서 내 안에서 껍데기로 존재하게 하지 말자.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또 다른 를 떼어내어 그에게 또 다른 세계의 삶과 알찬 영혼을 주어 하나의 개체적 로 키우자.

 

지금, 이 순간 내가 딛고 서 있는 이곳, 그리고 생각하는 이곳, 바로 이곳이 나의 세상이고 내가 살아가야 할 길이다. 그렇기에 가장 행복한 세상이다. 여기서 종교적 성찰과 믿음, 철학과 사상의 책받침이 무슨 필요로 하겠는가. 이곳보다 더 나은 그곳은 없다. Now and Here, 지금 여기가 바로, 행복이 있는 곳이다. 카르페 디엠. 

 

글/시인, 문학평론가 홍영수jisr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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