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2(월)

가야산 해인사를 찾아서-곽욱열 작가

산 빛을 담은 맑고 시원한 물소리가 마음을 적시고, 펼쳐진 너럭바위가 발길을 붙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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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4.01.31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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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좋아서 친구들에게 등산을 한번 하자고 하면, 반문하기를 어릴 때 나무하러 지겹게도 다녔는데 무슨 산이냐고 우스갯소리를 자주한다볼거리가 없던 어린 시절엔 학교에서 소풍을 가봤자, 절 구경이나 하고, 계곡이나 숲을 찾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제 산을 즐겨 찾는 까닭은, 산은 심신을 다스리는 수양의 도량이 되기 때문이다. 세속에 가득 찬 자아의 고집을 비우고, 버리고, 낮추며, 말이 필요 없는 나와의 대화로, 심성을 바로 잡아 삶의 참된 깨침을 얻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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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야산


허실생백(虛室生白) 허왕실귀(虛往實歸)”. 방을 개방하면 광선이 들어와 환하게 되듯이, 잡념이 없는 마음으로 대해 나가면 사물의 이치는 저절로 깨닫게 되어 배()를 가득 채운 상태로 돌아오게 된다. , 비움이란 바꿔서 채우는 것이다. 자연과의 소통으로 탐욕과 집착을 버리고, 마음을 비워 무념무상의 경지에서 중도실천의 깨달음을 얻고 유유자적 하려는 것이다.

 

이번 여행은 아내와 함께 남도기행의 일환으로 잊혀져가는 고향의 추억을 더듬고, 문화예술의 진수(眞髓)를 찾아보자고 가야산과 해인사를 답사하기로 하였다가야산은 백두대간이 추풍령을 지나 남쪽으로 뻗어 내리다가 대덕산에서 분기하여, 수도산에서 동남쪽으로 내린 내륙의 지맥으로,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을 중심으로 거창군 일부와 경상북도 김천시,성주군 일부와 도계를 이루며 결승(決勝)한국립공원(연면적76.256,72.10.13지정 제9)이다.

 

신록이 무르러가는 오월을 만끽하며,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다가 김천I·C에서 나와, 성주·고령 가는 지방도로에 오르니 가야산의 웅자(雄姿)한 모습이 성큼 다가와 시선을 사로잡는다산형절어천하(山形絶於天下) 지덕도어해동제일(地德渡於海東第一)” 이라산의 빼어난 형상은 천하의 으뜸이요, 품은 지덕은 해동의 첫째라, 삼남(三南)의 금강산이라 부른다.

 

성주군 수륜면에 도착하니 감회가 새롭다. 이곳은 나의 외가(外家)로 가슴에 와 닿는 것도 많지만, 강산이 몇 번이나 바뀌어, 변하지 않는 것은 산등성이만 눈에 선하다. 59번 지방도를 타고, 적송리를 지나, 중간지점인 도계의 백운대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서북방향으로 가야산의 정봉(頂峯)이 한눈에 들어온다불꽃처럼 타오르는 것 같기도 하고, 연꽃처럼 뾰족한 기암의 열립이 화려 장엄하여 연화세계(蓮花世界)를 이루는 듯, 영산의 정기가 감돈다예부터 가야산은 화산(火山)이라 하여, 산세가 웅장하고 풍수지세도 험하여, 불기운을 잠재우기 위해, 매년 단오 날이 오면, 해인사스님들은 남쪽 매화산 제일봉(1,010m)과 사찰경내에 소금을 묻는다고 전한다.

 

가야(伽倻)의 지명 유래는, 역사적으로 합천·고령지방은 1,2세기경에 일어난 대가야국의 땅이다. 신라에 멸망 한 뒤 처음에는 대가야 군으로 불렀다. 현재는 행정구역상으로, 합천군 가야면과 고령군에 대가야읍이 있고, 세계문화유산인 가야고분도 산재해 있다.

금관가야국 시조인 김수로왕 7(A.D48)에 인도의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이 도래(渡來)하어 왕비가 되었고, 석존이 성도한 인도 제1의 신성한 설법 처인 붇다가야(佛陀伽倻.Buddha Gaya) 이름을 가져와 산명을 부친 것이 가야산이다. 또 산의 정상부가 소의 머리처럼 생겼다하여, 일명 우두산(牛頭山)이라고 부르는데, 인도 범어로 ‘Gaya’의 음역이 소(),코끼리()를 뜻하므로 또한 산명이 유래한다.

그래서인지 산 정상도 쇠뿔처럼 두 개의 봉우리가 솟아 있다. 주봉인 상왕봉(牛頭峰 1,430m)은 합천군 지역이고, 200m거리를 두고 있는 칠불봉(七佛峰1,433m)은 성주군 지역이다가야산의 등정 코스는 백운대지구와 해인사지구로 나누는데, 백운지역은 관리사무소에서 심원골로 서장대(상아덤), 서성재로 올라 정상에 오르는 길로 약 2시간 반 정도 소요되고, 좀 험한 편이나 가야산의 진수(珍秀)를 다 볼수 있다.

 

필자는 몇 년 전에 산악회원들과 오른바있어 이번엔 해인사 답사를 마친 후, 치인리 민박촌에서 1박을 하고, 해인지구 용탑선원에서 정상에 오르기로 시간을 잡았다.

 

야천리에서 우회전하여 해인사 입구에 들어가니 法寶宗刹伽倻山海印寺문루가 대가람의 위용을 나타낸다해인사는 우리나라 삼보종찰(三寶宗刹:불보종찰통도사,법보종찰해인사,승보종찰송광사)의 하나이며, 소중한 인류문화유산인 고려대장경을 모신 사찰로서, 대적광전을 비롯한 30여동의 본전건물과 백련암 홍제암 국일암 등16개의 암자와 75개의 말사를 거느리는 한국선불교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수도처로 조계종의 종합도량이다.

 

창건 연대는 화엄종의 개산조인 의상대사의 법손이며, 신림(神琳)의 제자인 순응(順應)조사가 당나라에서 유학한 후 돌아와, 신라 애장왕 3.정원18,802)에 애장왕의 조모인 성목왕태후의 후원으로 초창하여 많은 인재를 길러내고, 그 후 법통을 이은 이정(利貞)화상이 진성여왕 대에 주지를 맡아 대 중창불사를 일으켜 사세를 크게 확장하였다.

해인(海印)은 바다의 도장이다 일렁임이 없는 깊고 넓은 바다에 만물의 형상이 그대로 비치는 것과 같이 번뇌가 없는 맑은 마음에 만물의 이치가 그대로 드러난다는 의미로 순응이 화엄경의 해인삼매(海印三昧)를 인용하여 해인사라 명명하였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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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가야산 소리길인 계곡의 시오릿길을 오르니, 산 빛을 담은 맑고 시원한 물소리가 마음을 적시고, 펼쳐진 너럭바위에 紅流洞의 각자(刻字)가 새겨있어 발길을 붙잡는다. 홍류(紅流)라는 이름은 곱게 물든 붉은 단풍잎이 맑은 물에 흐르는 계곡이라는 데서 유래한다계곡에는 고운이 노닐던 농산정(籠山亭)과 무릉교가 있고, 그 맞은편 돌벼랑에 제가야산독서당시가 새겨져 있다.

 

狂奔疊石吼重巒(광분첩석후중만) 人語難分咫尺間(인어난분지척간)

常恐是非聲到耳(상공시비성도이) 故教流水盡籠山(고교유수진농산) (고운의 친필)

 

첩첩한 산을 호령하며 돌 사이 미친 듯 달리는 물소리에, 사람의 말소리는 지척사이에도 분간키 어려워라, 인간세계의 시비소리 내 귀에 닿을 까봐, 흐르는 물소리로 산을 온통 둘러쌌구나.

 

최고운이 한편의 서각(書刻)을 남기고 물처럼 바람처럼 선인이 되어 종적을 감추었으니, 무상하기만 하다최치원(崔致遠,자는孤雲, 857~?)은 신라말기의 대 학자로 당나라에 유학한 한림학사이며, 경주최씨의 시조이다. 유적으로 진각국사비, 숭복사비, 사산비, 지증대사적조탑비가 있고, 저서는 계원필경, 중산복궤집, 석순웅전 등이 남아 있다.

 

정오 무렵에 치인리 신부락에 당도하여 숙소를 정하고, 인근 식당에서 버섯전골과 산채 비빔밥을 주문하니, 주인아주머니가 약수로 빚었다는 막걸리 한 사발을 가져와 한번 맛 보이소하며 그냥 주기에 마시니 정말 맛있었다. 향기로운 봄의 흥취에 젖어 마시는 방료(芳醪)에다 질박한 경상도 사투리로 정을 더하니 차에서 쌓인 피로가 단박에 사라졌다.

 

식사를 마치고, 관광객에 휩싸여 사찰탐방로를 따라 사적비와 불망비(不忘碑)를 모아 세워놓은 석비군(石碑群)과 비각, 성철종정 사리탑비, 반야사원경사비(보물제128), 묘길상탑(3층석탑.유형문화재제253) 등을 둘러보고, 숲속을 따라 영지(影池)앞에 서니, 노거수사이로 멀리 보이는 영봉이 천상에 연꽃 한 송이 솟은 듯하다.

 

당간지주가 있는 일주문 앞에 서니, “伽倻山海印寺현판이 걸려 있어 해인사 제1문으로서 위풍이 당당하다. 글씨는 근대 서예가인 해강 김규진(金奎鎭1868~1934)이 썼다. 일주문은 일명 홍하문(紅霞門)이라고도 한다. 진리의 세계를 향하는 구도자가 인과응보의 도리를 믿고, 선행하며 깨달음을 구하겠다는 일심(一心)을 다지는 문이다. 뒷면에는 海東第一道場”(서예가 朴海根글씨) 현판이 걸려 있다.

100m 가량 숲속 길을 오르니, 2문인 봉황문이 있고 海印叢林”(서예가鄭鉉福글씨) 편액이 걸려있고, 두눈을 부릅뜨고 위엄한 모습을 한 사천왕이 청정도량을 외호 한다. 천왕문은 동쪽을 수호하는 지국천왕, 남쪽을 지키는 증장천왕, 서쪽을 지키는 광목천왕, 북쪽을 지키는 다문천왕이 수행자의 마음속에 있는 번뇌를 씻어내고 일심 정진할 것을 다짐하는 문이기도 하다.

다시 30m 정도 지나 돌계단을 오르니 제3문인 해탈문(不二門)이 나오고 海東圓宗大伽藍”( 만파당 의준화상 글씨) 편액과 안쪽에 海印大道場”(우남 이승만 대통령글씨) 편액이 걸려 있다마당주변에는 종각. 자운당. 불교회관이 둘러 있고, 구광루에 올라서니, 연등이 가득한 광장에 관음전과 궁현당이 있고 ,중앙에 3층 석탑이 있어, 탑돌이 하는 관광객과 불자들의 공양 행렬이 줄을 잇고, 소리없는 울림 , 심중을 울리는 일승원음이 날빛에 가득한 듯 하였다.

 

대적광전에 오르니, 해인도량이 한눈에 들어오고, 즐비한 사찰의 지붕선과 우거진 녹음이 대가람의 운기(雲氣)를 느끼게 한다대적광전(大寂光殿)은 크나 큰 선정()과 크나 큰 지혜의 빛()이 가득한 삼매의 보궁(寶宮)이다. 온갖 꽃들이 화려한 화엄의 세계이다. 중앙 돌계단에 두 사자석의 포효(咆哮)가 일체를 승복케 하니, 사방에 진리광명이 충만한 듯하다.

향내음 맡으며 전각을 돌아보니, 정면에 大寂光殿”, 동남측면에 金剛戒壇”, 서북측면에 法寶壇”, 뒤편에 大方廣殿편액이 걸려 있고, 사방에 꽃살문이 있어 대장각과 연결되고, 법당에는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시고, 탱화와 부처로 불계를 이루어 장엄하고 심오하다. 수많은 편액을 보니 법보 종찰의 진면목을 느끼게 한다모두 당대의 명필가의 글씨인데 일일이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또 한 아쉽기만 하다.

 

해인사는 가야산 서남쪽 해발730m에 위치한 유곡으로 삼재불입처( 三災不入處)의 한 곳이다심재란 수재(水災) 화재(火災) 병재(兵災)를 일컫는데, 임진왜란 때 전국 방방곡곡이 왜군의 발길에 참상을 겪었지만, 가야산 소백산 오대산 세 곳은 삼재가 들지 않는 영산으로 꼽혔다그래서 지형적으로 안전한 이곳에 대장경을 봉안하고, 불력으로 국난을 막아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것이다. 대장경판전은 절의 가장 높은 곳이며, 일주문에서 백팔계단을 올라야 한다.

 

대장경판전(국보 제52)은 수다라장, 법보전, 동사간고, 서사간고 네 동의 단층 건물로, 108개의 두리기둥에 64칸으로 축조하여, 고려대장경판 81,258(국보 제32)와 고려 각판(刻板) 2,275(국보 제206)를 보관하고 있다고려대장경판 초조대장경은 고려 현종 때 글안 병을 물리치기 위하여 조성(1,0765,048)하여 팔공산 구인사에 보관하였으나, 1232(고려고종19) 몽고의 침입으로 소실되고, 현존하는 재조대장경(再雕大藏經)은 몽고를 물리치기 위하여 강화도에 대장도감 본사를 두고, 진주 남해 등지에 분사를 설치, 1236(고종23)에 시작하여 1251(고종38)에 이르는 16년간에 걸쳐 재조한 목판본으로, 원목은 섬지역의 산배나무 돌배나무 후박나무 자작나무 등을 바닷물에 적시고 말리기를 9년이 소요되었으며, 강화도 선원사에 소장되었다가 1398(조선태조 7)에 서울의 지천사(支天寺)를 거쳐 해인사로 이관하여 보관하는 세계 문화유산(95 12 유네스코 지정)으로 세계사에 길이 남을 자산이요 자랑이다.

 

사찰 답사를 마치니, 어느덧 오월의 긴 하루도 뉘엿뉘엿 해가 기울어 내려오는데, 응진전 주련의 글귀가 감명을 주기에 실어본다.

 

한정일발낭(閒情一鉢囊) 임조래상열(林鳥來相悅) 제천영리종(諸天影裏鍾)

공안욕화우(公案欲花雨) 산공화자개(山空花自開)“

 

한가로운 마음 바랑속에 담아두고, 숲속에 날아드는 새들과 선정(禪定)의 기쁨을 나눈다. 종소리에 모든 천상의 가호(加護)가 떠오르고, 공안에 꽃비 내리고자 원한다면, 사상산(四相山: 我相. 人相. 衆生相. 壽者相)을 비우면 꽃은 절로 피리라.

즉 사상(四相)은 무상한 것, 나에 대한 집착과 우월의식(我相), 너에 대한 상대성과 차별의식(人相), 모든 시물에 대한 분별과 열등의식(衆生相), 내가 영원할 것이라 착각하고 애착하는 마음(壽者相)을 놓지 못하는 것으로, 마음읕 비우고 선정에 들어 무상한 공(,sunya)의 깨침을 얻어 라는 것이다.

 

산사의 밤은 고요하기보다 적막감이 돌았다. 아침에 일어나니 밤새 조작거리던 비도 걷히고, 푸른 잎들은 하늘거리며 윤기를 더 하였다. 가벼운 등산차림으로 용탑선원에서 계곡을 따라 오르니, 벌써 수많은 산인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스쳐 지난다. 한 시간 쯤 올라 마애불(높이7.5m어깨너비3.2m. 보물 제222)을 친견하고, 숨을 돌려 다시 한 시간을 오르니, 눈 아래로 첩첩 산들이 구름을 이고 그윽하고 깊디깊다.

가파른 암벽 길을 타고 오르니, 드디어 정상에 도착 伽倻山 牛頭峰 상왕봉 해발1,430m 陜川郡이라고 새긴 푯돌이 의연하였다.

멀리 바라보니 동쪽으로 팔공산 비슬산이 늠연하고, 서쪽으로 백두대간인 덕유산, 금원산, 기백산이 지리산을 향해 달린다. 정상은 사방에서 올라오는 산인들로 너나없이 반갑고, 환희의 법석이었다. 정상에서 남녘 바라보면서 좌정하여 한 시간을 보냈다.

 

아름다운 금수강산!

힘찬 맥박이 울리고, 유구한 민족의 혼이 서린다

달리는 운무(雲霧)는 산천에 어울고

이내 마음 깊음에 열락(悅樂)하니

연화(蓮花)의 향기가 가득 하도다

 

! 대자연의 우렁찬 오케스트라...

한 마리 새가되어 나래를 펼치니

푸른 하늘에 둥근 해가 새 비추 누나. (곽욱열의 )

 

해인사에 오면 가야산 호랑이 성철스님(1912~1992,조계종종정)의 설파(說破)가 뇌리에 스친다.

생멸도 없고(不生不滅), 더럽고 깨끗함도 없고(不垢不淨), 불어나고 줄어드는 것도 없고(不增不感), 있고 없는 것도 없고(有無不二), 시비(是非)도 버린, 모든 양변을 버린 중도(中道)법문의 원만한 깨달음을 생각하니 무명(無明)한 이 마음을 깊게 만든다.

 

보이는 만물은 관음이요, 들리는 소리는 묘음이라, 보고 듣는 이 밖에 진리가 따로 없으니,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山只是山 水只是水)”

 

자기를 속이지 마라. 자기를 바로 보라. 남을 위해 기도하라. 남모르게 남을 도우라는 자비의 우레가 메아리친다.

 

하산하는 길은 다시 능선을 따라 산죽이 우거진 완만한 계곡 길로 내려오니, 바람결에 일렁이는 산죽의 정취(情趣)가 가야산의 인상을 더욱 깊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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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욱열

시인.수필가 2011계간<일원>등단. 한국문인협회부천문인회원.서울시우문학회원.한올문림회원.서울특별시시우회이사,부천시립도서관운영위원.(저서)차한잔의사색, 뿌리를찾아서, 삶의뉘앙스, 모닥불, 내마음의정토를찾아, 지혜로보는노자도덕경외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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