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7(수)

지리산에는 아재가 산다 /3회

박희주 중편소설

댓글 0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밴드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기사입력 : 2018.03.25 12:09
  • 프린터
  • 이메일
  • 스크랩
  • 글자크게
  • 글자작게
박희주 시인. 소설가전북 임실 출신. <월간문학>신인상.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네페르타리소설집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시대의 봉이장편소설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현 부천문협 회장 galbeolheejoo@hanmail.net
***
*
*
세상을 어떻게 살았는가?
나이 40이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지라는 말이 있듯이 집 꼬락서니를 보면 가장의 능력과 생활태도를 알 수가 있잖은가. 매일같이 술집에서 노닥거리는, 밤늦게까지 술 마시고 해가 중천에 떠있을 때야 일어나는, 이곳저곳에서 술 얻어먹고 계곡 어디나, 길거리 어디에서나 퍼질러 누워있는, 그러다 끼니꺼리가 떨어져 마지못해 일을 나가는, 사람은 좋아 돈 좀 생기면 아무에게나 인심 푹푹 쓰는, 그런 아재의 모습이 집을 보면서 그려졌다.
만동아.”
성조가 조용히 부르자 쏜살같이 문이 열리며 얼굴이 까만 사내아이가 신발도 신지 않고 뛰어나와선 과일과 과자가 잔뜩 든 봉지부터 챙긴다. 많이 컸다.
잘 놀았어?”
……
눈만 끔벅거릴 뿐 어쩔 줄을 모른다. 반가운 표정이 역력하다.
아빠는?”
말도 없이 산을 가리키는데 그때서야 기척도 없던 거구의 여자가 미닫이문을 활짝 열고서 어눌하게 말한다.
산에.”
알아요. 전화통화 했어요. 곧 내려 올 거예요. 그동안 별고 없으셨죠?”
그녀는 헤헤 웃으며 고개만 끄덕끄덕. 어미나 아들이나 목욕은커녕 세수도 안한 듯 얼굴엔 땟자국이 가득하고 옷도 역시 꾀죄죄하다. 아이는 그렇다 쳐도 어쩌면 저럴 수가! 참 심난하게도 생겼다.
그럼 저기 가 있을게요.”
그래도 헤헤거리며 고개만 끄덕거리는데 성조는 90도로 허리까지 굽혀 인사한다. 그녀도, 만동이도 저기라고 했을 때 어딘 줄 뻔히 아는 모양.
나도 성조처럼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만날 때 저렇게 깍듯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나는 정말 자신이 없다. 천성일까, 나는 사람을 가려서 대하는 나쁜 버릇이 있다. 고치려하지만 쉽지 않다.
나는 아재를 잘 모른다. 성조를 통해 아는 게 전부다.
아재가 엄청 술에 취했었단다. 아재 꼴에 여자가 따를 리 없고 산처럼 물처럼 세월만 보내다 사십이 되어 바보처럼, 아니 바보여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여자를 보았단다. 비틀거리며 걸어가는데 그 바보가 아재를 보고 자꾸 헤헤거리더란다. 아재 꼴에도 행여나 마주치면 재수 없다 생각하던 이웃마을 여자였는데…… 덩치가 산만 하여 술 취한 눈에 아주 든든해 보이더란다. 그래 꼭 안기어 잠이 들었더니만…… 임신이었다고. 누굴 탓할 수도 없고 이왕 엎질러진 물, 내가 뿌린 씨앗 내가 거두리라고, 그렇게 만난 부인이란다.
내 기분과는 상관없이 성조는 마냥 기분이 좋았다. 이 집에서도 저 집에서도, 무엇이 그토록 성조의 기분을 들뜨게 하는가.
성조는 입만 벙긋하면 지리산의 어린 시절을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고 했다. 강냉이 한 통을 물에 불리고 불려서 커다란 솥에 펄펄 끓여 온 식구가 먹었단다. 허구 헌 날 굶다보니 굶는다는 게 오히려 자연스러울 정도였고, 봄이나 여름엔 새싹과 새순을 뜯어다가 끓는 물에 데쳐 소금을 찍어 먹었으며, 가을엔 산에서 나는 열매로 배를 채울 수 있었지만 겨울나기가 제일 힘들었단다. 오죽했으랴, 그 단단하고 씨만 많은 돌배가 먹을거리였으니, 그것마저 없어서 못 먹었다는데. 쌀은 아예 생각도 못해보고 보리쌀은커녕 잡곡도 구경하기 힘들었단다.
굶는다는 건 생각할 수도 없었던 나의 어린 시절. 밥만 먹다가 어쩌다 껍질 벗겨 당원을 넣어 찐 감자를 점심으로 먹었던, 옥수수를 너무 뜯어먹어 밥맛을 잃었던, 국수를 먹으면 머리가 아팠던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성조가 오자마자 찾는 아재, 그 아재하곤 위아래 살았는데, 많은 세월이 흐른 뒤 와 보니 아재는 선유동에선 나왔지만 여전히 지리산 기슭에 살고 있더라고. 약초를 캐고 버섯을 채취하며 지리산 봉우리, 봉우리마다 딸린 계곡, 비탈을 제집처럼 드나들고 있었단다.
간판의 선유슈퍼라는 빛바랜 글씨는 유심히 보지 않으면 알아보기 힘들었다. 선명한 담배 마크 때문에 가게인 줄 알겠는데 식당과 민박까지 겸한다는 걸 알 수 있는 건 입간판 때문이 아니라 후덕한 주인의 인심이 소문나서 그렇다고.
성조가 애틋한 정을 나타내는 세세세 친구의 이름은 자영. 그녀는 우릴 가장 전망이 좋은 자리에 상을 놓아주었다. 그런 사소한 배려에도 성조는 감격하여 감탄사를 연발하고.
그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련한 첫사랑,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오히려 사랑이랄 수 있는, 생각만 해도 가슴을 울리는 북소리, 단 하루도 생각나지 않을 수 없는, 죽어서나 잊어질 그 몹쓸 인연을. 그런데 세세세 친구도 그런가보다.
자영 씨, 우리 토종닭 두 마리만 해주세요.”
웬 두 마리씩이나예? 한 마리만 해도 두 분이서 실컷 잡숫고 남을 건데예. 만동 아빠가 와도 충분합니더.”
잘 알아요. 그렇지만 내 말대로 해줄랍니까, 자영 씨?”
묻는 것도 참 나긋나긋하다. 소꿉친구 중 자영 씨에게만 반말을 하지 않는 성조 심보를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 정도로 소중하게 느껴지는 건지.
지 생각해서 그런다면…….”
아니에요. 참 내가 책 한 권 드릴게요. 이 친구 작가인 줄 알죠?”
하먼예. 그전에도 받았습니더.”
그랬었다. 아마 소설집이었을 거다. 성조는 부리나케 차에서 책을 가져왔다. 난 성조에게 단 두 권을 줬을 뿐인데 아무래도 서점에서 넉넉히 산 모양이다.
야 인마, 빨리 사인해드려. 내 세세세 친구란 말야.”
그놈의 세세세 친구. 그야말로 귀가 닳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뭐라 쓴다? 자영 씬 지리산 밖으로 한 번도 나간 적이 없으니. 이름만 써서 줄 것 같으면 성조는 애당초 내게 서명하라고도 않았을 테고.
<도시엔 별이 없습니다. 도시의 달밤엔 음악도 없습니다. 선유동에선 선녀가 별과 달을 데리고 놉니다.>
너무 아부했나? 그걸 본 성조는 입이 찢어질 지경.
지리산의 계곡을 비치는 해는 여름인데도 훌쩍 넘어가 버렸다. 땅거미가 깊고 낮은 곳으로부터 기어들자 계곡을 가득 메웠던 인파도 각자의 처소로 돌아가고, 혈기왕성한 젊은이들만 계곡 양쪽에 텐트를 치고 아직까지 열기를 식히고 있는데.
깊은 계곡 쪽 다리 쯤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더니 가게 앞에서 이내 멈췄다. 그리곤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한 사나이가 오고 있었다.
비쩍 마른 몸매, 크지 않은 키, 검은 얼굴에 쑥 들어간 눈, 초라한 옷차림, 손에는 검은 비닐봉지, 가혹한 세상살이에 지쳐 겨우 살아있는 듯한, 웃어도 웃는 것 같지 않은, , 소쩍새처럼 피를 토하며 울어댈 것 같은, 입을 벌리면 시뻘건 한이 소름 돋을 것 같은 사내. 그를 본 순간 어째서 또 소쩍새가 그려졌는지 모른다. 지리산에 소쩍새가 많이 사는가? 나는 아직 그 새의 울음을 여기서 들은 적이 없다.
아재였다. 지리산 아재.
그를 본 성조가 벌떡 일어나 달려 나가 손을 잡고. 나는 엉거주춤 일어서서 그가 우리 자리에 왔을 때 손을 잡았다.
연락이나 좀 하고 오제 그랬소. 그럼 준비 좀 할 낀데.”
준비는 무슨. 산에 가서 뭐 하셨어요?”
성조는 그를 자신 옆에 앉힌다.
뭐 좀 있을까 하고 갔는데 별로 없습디다. 김 사장 전화 받고 내려오다가 매운탕꺼리 좀 잡았습니더.”
뭐 할라고 그래요. 여기서 시켜 먹으면 되는데. 나 아재한테 대접받으려고 여기 오는 것 아니에요. 산 보고, 물 보고, 좋은 공기 마시고, 또 옛날 생각나서 오지요.”
누가 모릅니까? 다 압니더. 하여튼 이거 끓입시대이.”
그는 봉지를 풀었다. 산 메기란다. 열 마리나 될까. 산 메긴 일반 메기보다 훨씬 작다.
닭 시켰어요.”
성조는 자영 씨의 일이 느는 게 달갑지 않은 모양.
닭은 닭이고 메긴 메기 아닙니꺼.”
그래요. 그럼 끓입시다. 근데 아재, 오늘도 술 자셨어요?”
목마르니까 산에 가지고 갑니더. 내려오다 또 동동주도 한잔 걸쳤지예.”
그러면서 오토바이 몰아요?”
걱정 마이소.”
만동이 생각해서 조금만 잡숴요.”
하이고 마, 많이 안 먹습니더.”
그러면서도 속은 있는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으며 비닐봉지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가 금방 돌아왔다.
아재. 성조가 같은 연배인 그를 아재라 부르는 건 성()이 같고 본()이 같아 남 같지 않은데다 고달픈 어린 시절을 같이 보냈다는 연대의식을 느끼고 싶은데 마땅히 부를 호칭이 없어 가장 친숙한 말을 찾은 결과라고. 우리가 예사로 부르는 김 형이나 박 형 같이 부르기는 싫었단다. 아재를 대하는 성조의 마음씀씀이는 참으로 각별했다.
성조가 수십 년 만에 지리산을 찾았을 때 생각지도 않게 까맣게 잊고 있었던 그를 만났으니. 그때의 반가움이란 이루 말로 형용할 수가 없었다고. 그런데다, 아무리 약초를 캐고 산들 남들은 떵떵거리며 잘만 사는데 그만은 가난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러면서도 하나라도 못 줘서 안달. 각종 약초, 버섯은 물론 진기한 나물 등속을 철따라 보내주고……. 성조가 그냥 받을 사람도 아니라 후하게 사례했을 테지만 그래도 그 성의가 너무 고마웠단다. 같이 굶어가며 악산을 돌고 돌아 배우고 싶은 마음에 학교도 같이 다녔다. 계곡에서 멱을 감고 조금은 형편이 나았던 아재네 도장방에서 훔쳐온 감자를 어른들 모르게 구워먹으며 허기를 달랬던 기억도 있었다. 그 당시 지리산 골짜기 어느 집인들 어렵지 않았으랴. 산골짜기가 지겨워서 객지로, 무작정 도회지로 다들 떠나버리고……. 누군들 짐작이나 했을까. 세월이 흘러 상전벽해(桑田碧海), 남은 사람들은 관광객이 몰리면서 거의 한 터전씩 잡았지만 아재만은, 이 아재만은 그렇지 못했다. 동정이 아니었다. 그런 아재, 세상 때를 전혀 타지 않은 아재를 만나고 나니 옛날이 그리워서, 배고픔이 사무쳐서 한번 본 아재가 보고 또 보고 싶더란다. 그리고 조그만 도움이라도 주고 싶었단다.
그랬다, 아재는.
아내랑 왔을 때, 아내가 암 투병 중이라는 얘기를 듣고 아재는 그 귀한 자연산 상황버섯을 무조건 내게 주었다. 자연산 영지를 듬뿍 얹어서. 그것뿐인가. 자기 집 냉장고에 보관해두었던 장뇌를 그 자리에서 씹어 먹도록 권했던 그다. 그러면서 절대 부담 갖지 마이소, 하며 고맙고 미안해하는 나와 성조에게 술이나 한잔 사이소, 그랬다. 나도 그에게 빚이 있다. 혹 모르겠다. 성조가 나 모르게 보답을 했을지는. 분명히 그냥 넘어가진 않았을 것이다.
산속에 놓아기른 토종닭 두 마리가 직접 담은 동동주와 함께 푸짐하게 나왔다. 자영 씨도 다른 손님들 뒤치다꺼리가 얼추 끝났다며 자연스럽게 같이 앉았다.
밤이 되니 시원한 바람이 계곡에서 불어왔다. 별은 쏟아질 듯이 하늘 가득 반짝이고, 날벌레들은 불빛에 모여들고, 절집에서 들려오는 범종소리가 그윽하니, 오늘 떠나온 서울이 까마득하게 멀어져 갔다.
 
    - 다음 편에 계속
 
 
태그

전체댓글 0

  • 82123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지리산에는 아재가 산다 /3회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
작업수행시간 :: 0.4287929534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