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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는 아재가 산다/4회

박희주 중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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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8.04.05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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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주 시인. 소설가전북 임실 출신. <월간문학>신인상.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네페르타리소설집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시대의 봉이장편소설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현 부천문협 회장 galbeolheejoo@hanmail.net
* * *
아재, 만동이하고 아지매 불러와요.”
성조의 깊은 소갈머리를 알겠다.
놔 두이소.”
그는 신세지기 싫은 모양이다.
많이 있잖아요. 남으면 뭐합니까?”
밥 먹었을 깁니다.”
그럼 내가 다녀올게요.”
에이, 그냥 놔 두이소.”
아재는 술부터 쭉 들이킨다. 보다 못한 성조가 일어서 나가며 오토바이까지 갖다 놓겠단다. 아재는 자작으로 거듭 술잔을 비우고 나는 자영 씨에게 건배를 제의했다.
사모님 돌아가셨지예?”
자영 씬 술잔을 부딪치고 나서 조용히 물었다.
아셨습니까?”
책 보고 알았습니더.”
많이 고생하다 갔습니다.”
자영 씨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한숨을 쉬자 묵묵히 술을 마시던 아재가 더 놀란다.
돌아가셨다고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술잔을 기울였다. 아재는 내내 혀를 끌끌 찼다.
어쩐대요, 너무너무 예쁘시던데.”
제 복이 거기까진가 봐요.”
사모님한테는 안 될 말이지만 어떡합니꺼. 산 사람은 살아야지예.”
숱하게 듣고 또 당연한 말이지만 자영 씨의 말은 남다르게 들렸다.
그래야지요.”
재혼하셔야지예?”
생각도 안하고 있습니다.”
와요? 주변에 좋은 여자 많으실 텐데예. 인상이 좋으셔서
빛 좋은 개살굽니다.”
그때 성조가 만동과 거대한 체구의 부인을 데리고 들어섰다.
만동아, 많이 먹어라. 아지매도 어서 드세요.”
자리가 꽉 찼다. 만동은 닭고길 보자마자 다리를 하나 들고, 부인도 뒤지지 않고 허겁지겁 달려들었다.
한 잔 하이소, 김 사장.”
마셔야지요. 그런데 아재 잔보다는 자영 씨 잔부터 받으면 안 될까? 세세세 친군데.”
허허허, 그럼 그렇게 하이소.”
성조의 말에 자영 씬 웃으며 잔을 가득 채웠다. 그걸 반쯤 마신 성조가 갑자기 심각한 얼굴로 아재를 부른다.
아재, 오토바이 뒤에 실은 자루 속에 있는 게 도대체 뭐요? 덫과 올무 같던데?”
몰라도 됩니다.”
아재 덫 놔요? 그거 불법인데?”
몰라도 됩니다. 나는 절대로 덫이나 올무 질은 안합니더.”
그럼 그게 뭐냐고요?”
몰라도 된다니까요.”
성조는 심각한데 아재는 술만 맛있게 홀짝였다.
만동 아빠 덫 같은 거 진짜 안합니더.”
정말입니까?”
하먼요.”
자영 씨가 나선다. 그때서야 성조는 안심이 되는지 술을 쭉 들이켰다. 첫사랑의 말이라서 믿음이 가는 걸까.
술자리는 무르익어 갔다. 아재는 안주보다는 술을 탐했고 그 식구들은 눈치라곤 모른다는 듯 안주를 탐했다. 성조는 하고 또 했던 옛날 얘기의 되새김질에 흠뻑 빠져 헤어날 줄 모르다가 간간이 미안한지 나를 끌어들였으나 그건 제 입맛을 돋우자는 양념에 불과했다.
밤이 깊어갔다. 계곡물은 잠도 자지 않고 한여름 밤의 더위를 식히는 소릴 계속해서 내질렀다. 그 소린 밤에나 느낄 수 있는 넉넉한 지리산의 여백이었다.
잔을 채우기가 무섭게 마셔대던 아재는 벌써 취했다. 앉아서도 몸을 가누지 못해 흐느적거리며 가물가물 졸고, 그걸 보는 성조는 안타까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아재, 그만 들어가 주무세요. 내일 선유동계곡이나 갑시다.”
, 가야지요. 거기가 진짜 우리 동네 아닙니꺼.”
혀가 꼬부라질 대로 꼬부라진 소리. 그래도 성조의 말에 아재는 비틀거리면서도 간신히 일어나 눈이 거의 감긴 채 문을 열고 나갔다. 걸음걸이가 위태로워 곧 쓰러질 것만 같은데, 아들과 부인은 그러든 말든 열심히 고기만을 탐한다. 성조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는지 결국 따라 나가 부축하고, 한참 만에 돌아와 자영 씨에게 묻는다.
요즘도 매일 술이지요?”
그게 낙이지예.”
식구들 끼니는 어떡하고요.”
그래도 굶기진 않습니더. 할 도리는 안합니꺼.”
성조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갑자기 웃음을 띠며 묻는다.
혜순 씨 내려왔습니까?”
혜순 씨라면 성조의 또 다른 세세세 친구다. 서울에서 사는데 민박과 음식점을 겸하는 산장을 인수하여 바쁠 때마다 내려온다고.
하먼요. 요즘이 피크 아닙니꺼. 있어예. 부를까예?”
올 수 있을까요?”
하긴 거기도 손님 치르고 있을지 모르니 이따 우리가 그리 가십시더.”
참 손뼉도 잘 맞는다. 세세세를 할 때처럼.
서운 씨도 부릅시다.”
장터 장서운예?”
. 여기 들어오다 들렀었거든요. 이 친구한테 관심 있는 모양입디다. 서로 처지가 비슷해서 그런가?”
가만히 듣고 있던 내가 무안하여 끼어들었다.
에라, 이 썩을 놈.”
성조의 등짝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내숭이었을까. 나도 남자다. 싫진 않았다. 아니 은근히 기대가 되었다. 술 탓만은 아니었다. 자영 씬 그러는 나를 보고 입을 가리며 웃는다.
장서운. 그녀의 이름이 서운이라. 아마도 그녀에겐 언니가 둘은 넘으리라.
늦게 문 닫을 건데예?”
늦으면 어때요. 그렇지 않아도 전화한다고 그랬어요. 택시 불러서 오라 그래요. 분명히 올 거요. 안 오면 내 손에 장을 지집니다.”
그 정도라예? ”
틀림없어요.”
차 있으니까 오는 건 금방 올 겁니더.”
성조는 야릇한 미소를 내게 지으며 눈까지 찔끔거렸다. 고개를 흔들었다. 너에게 질렸다는 표정으로.
매운탕 끓였는데 가져올까예? 닭죽도 있고.”
둘 다 가져오세요. 만동이도 있으니까
자영 씨가 길 건너 주방으로 나가자 성조는 기쁨을 참지 못하고 묻는다. “, 도후. 어떠냐, 우리 세세세 친구. 다정하지 않냐?”
그래, 오늘밤 구경 좀 하자. 얼마나 잘 맞는지.”
, 그럼 이따 노래방도 갈 텐데 너 서운이 오면 잘해봐라. 자영인 내 영원한 짝이니까. 그나저나 혜순이가 큰일 났다. 짝이 없으니.”
걱정도 팔자다.”
원래는 너를 혜순이 짝해줄려고 했는데……. 서운이는 사실 생각도 안했다가 엉뚱하게 너하고 된 거야.”
야 인마! 너 너무 오버 한다?”
성조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했다. 내 말엔 대꾸도 안하더니 더 가관이다.
아재가 술이 안 취했어야 짝이 맞는데.”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 성조는 아재 부인을 힐끔거리며 웃지도 않고 속삭였다.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어림도 없는 소리 마라. 어느 여자가 그 주정뱅이와 짝을 할까? 아무리 희극이라 할지라도. 더군다나 서울에서 산다는 여자가. 나는 벌써 아재를 무시하고 있었다.
만동이와 그 엄마는 이제 뼈까지 다 발라먹었다. 참으로 맛있게. 만동 엄마는 130킬로도 더 나갈 것만 같았다. 문이 드르륵 열렸다.
김 사장님 오셨습니까. 조금 전에야 소식 들었습니다.”
키가 호리호리하고 눈웃음 살랑살랑 치는 또 다른 약초꾼이 나타났다. 나이는 우리와 비슷하단다. 성조에게서 그 사람 됨됨이를 들어 알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말끔하고 차림새는 말쑥했다. 조금 벗겨진 이마는 번들거리고. 똑같은 약초꾼인데도 햇빛에 그슬리고 기미가 잔뜩 낀 아재의 얼굴과는 딴판이었다. 그에게선 약초꾼보다는 장사꾼 냄새가 더 풍겼다. 성조에게서 이미 들은 말에 의한 선입견일지 몰라도.
아 예, 어서 오세요. 오랜만입니다. 연락을 드려야 하는데 우리끼리만 먹어 어떡하지요?”
, 뭘요. 괜찮습니다. 얼굴이나 뵈려고 왔습니다.”
그는 웃음을 거두지 않으며 아재가 앉았던 자리를 차지한다.
곧 닭죽이 나오니 한 그릇 하고 가세요.”
성조가 그와 나를 인사시키고 나자 자영 씨가 닭죽과 얼큰해 보이는 매운탕을 가져왔다. 자영 씬 약초꾼을 보고도 본체만체했다.
사업은 잘 되시지요?”
, 덕분에. 요즘 벌이는 어떠세요?”
다 자기 하기 나름이죠. 맨 날 술이나 처먹으면 별 수 없고 저같이 부지런 떨면 괜찮다고 봐야지요.”
대번에 아재를 씹더니 은근히 제 자랑이다. 아재 부인과 아들이 아무리 못나고 어리다고 할지언정 버젓이 앞에 두고도 눈 하나 깜짝 안하고 그들의 존재를 무시해버리는 오만. 교활한 사람이라는 인상이 금세 풍겼다. 그게 바로 타관 사람임에도 단기간에 기반을 닦을 수 있었던 비결이었을까. 성조는 그의 장삿술에 혀를 내둘렀었다. 송이가 나는 철에 직원 몇을 데리고 이곳에 잠시 들렀다가 산지가격이라 해서 사먹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백화점 가격이나 마찬가지였고, 여동생 부탁으로 장뇌를 몇 뿌리 믿고 샀다가 낭패를 당했다나. 무슨 이유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당시 아재는 술을 마시고 오토바이를 타고가다 개울에 처박혀 다리에 골절상을 입어 움직일 수 없었단다.
뭐 필요하신 것 없습니까? 말씀만 하십시오. 내게 없으면 구해서라도 김 사장님께는 드릴 테니까요.”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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