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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는 아재가 산다/5회

박희주 중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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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8.04.15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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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주 시인. 소설가 전북 임실 출신. <월간문학>신인상.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네페르타리소설집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시대의 봉이장편소설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현 부천문협 회장 galbeolheejoo@hanmail.net
* * *
아직은 없습니다. 필요하면 연락드리지요.”
만동과 그 엄마는 이제 닭죽에 매달리고 우린 매운탕을 안주로 삼았다. 얼큰하고 내 입맛에 딱 맞아 자영 씨의 솜씨를 알겠다.
선기는 만나셨지요?”
, . 조금 전까지 여기에 있었습니다. 술이 취해 먼저 들어갔어요.”
그 자식 그러다 곧 뒈질 거예요. 웬 놈의 술을 그렇게 처먹는지. 뭐 좀 있답니까?”
그는 자리에 없는 아재를 씹고 또 씹었다. 선기가 아재의 이름인 건 처음 알았다. 성조가 입을 떡 벌리고 그를 멍하니 쳐다봤다. 비위가 상한 거다. 자영 씨는 성조의 눈치를 살피더니 슬그머니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린다.
안 물어 봤어요.”
참 한심한 인간입니다, 자식새끼도 있는 몸이. 그렇게 사느니 우리 같으면 진작 혀 깨물고 죽었을 겁니다.”
성조의 얼굴이 굳어졌다. 성질이 났다는 거다.
아마 아무것도 없을 겁니다. 있어도 걔 물건이라 봐야 젤 핫바리지요. 부지런을 떨어도 좋은 걸 얻을 수 있을까말까 한데 그러고 다니니 아마 남들이 다 훑고 난 찌끄러기나 겨우 건질 겁니다. 하는 꼬라지가 그러니 집안 꼴 좀 보십시오. 돼지굴인지 소굴인지. 실력은 인정해요. 지리산 구석구석 뭐가 나고 뭐가 있는지 귀신이지요. 그런데 그러면 뭐합니까. 술에 뭔 웬수졌다고 그렇게도 마셔대고 처먹기만 하면 개차반이니. 난 그만큼 알지 못해도 이제 선기와 내 차이는 자전거와 자동차라고나 할까요.”
참으로 안하무인이다. 아재 부인이 아무리 어리뜩할지라도 이게 할 소린가?
혹 멧돼지나 노루 고기 맛보시려면 언제든 연락주세요. 심지어 곰을 구해달라면 구해놓겠습니다. 살쾡이, 너구리, 오소리는 말할 것도 없고 남자 양기 돋구는 능사도요. 삼도 구할 수 있어요. 선기한텐 아예 기대도 마세요. 어림도 없습니다.”
기가 막혔다. 그러나 성조와 난 듣고만 있었다. 그가 말하는 삼은 장뇌 아니면 산삼이리라.
재미 좀 보셨습니까?”
내가 물었다. 벨이 꼬여서.
제 단골이 기백이에요. 전화가 불이 납니다. 벼라 별 것을 다 구해달라고 허는 데는 미치겠어요. 그래도 단골 안 놓치려고 무척 애쓰지요. 그래도 어지간한 건 다 들어 줬어요. 어떤 건 시간이 좀 걸려 그렇지. 선기는 벌써 틀렸어요. 여기서도 잘만 머리 굴리면 도시의 어지간한 월급쟁이 부럽지 않아요.”
그래서 그럴까. 그가 작업 나갈 때는 1t트럭을 몰지만 그가 강조하는 비즈니스엔 최신형 산타페를 굴린단다.
그렇겠네요.”
무슨 일이나 마찬가지로 머리 쓰기에 달렸어요. 좆 빠져라 다녀봐야 힘만 들지 아무 소용없어요. 우선 돈이 돼야지요.”
…….”
그리고 저 어린앨 뭐 하러 산에 데리고 다니느냐 말입니다. 돈이나 많이 벌어 잘 가르칠 생각을 해야지요. 요즘이 어떤 시댄데 대대로 산 탈 일 있어요?”
“?”
뭐니뭐니해도 돈이 최고인 세상 아닙니까?”
할 말을 잃었다. 과연 돈이 최곤가? 자영 씬 나간 지 오래고 만동과 그 엄마도 그릇을 다 비웠음인지 그만 나갈 태세다. 성조는 한시라도 빨리 세세세를 하고 싶은 눈치고.
오늘은 피곤하니까 다음에 얘기합시다.”
드디어 성조가 참지 못했는가, 그만 가달라는 말이다. 나도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그럴까요. 그럼 연락 주십쇼. 내일 당장이라도 필요하신 게 있으면 말씀만 하시고.”
그는 일어서면서 트림을 걸쭉하게 하곤 밖으로 나갔다. 약삭빠른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잘 살고 그걸 본받으라, 부추기는 세태다. 뭔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다. 나는 그의 이름을 약삭바리라 부르기로 했다.
우리도 일어섰다. 성조는 세세세를 위해 이곳에서 4킬로나 더 깊숙한 계곡에 있는 산장으로 가야만 한다. 혜순 씨가 있는. 아재 부인과 만동이도 일어서 나갔다. 잘 먹었다는 인사도 할 줄 모르고 성조를 향해 멀뚱멀뚱 몇 차례 눈만 끔벅이고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지, 아재를 생각하니 그들 모자가 한없이 가엾게 느껴지면서 가슴이 답답해졌다.
문소리가 연이어 들리자 자영 씨가 가게에서 나온다.
신랑이 뭐라 안 해요?”
성조는 자영 씨가 자기로 인해 화를 입을까 걱정인 모양.
세세세 친구는 예외랍니더.”
성조의 입이 다시 찢어졌다.
봤지, 도후야. 니 첫사랑은 신랑 무서워 나오지도 못한다며?”
나의 첫사랑? 그녀는 왜 들먹이는가. 죽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다신 이루어질 가망 없는 그 인연을.
너 모르는구나. 첫사랑은 가슴에 묻어놓는 거야. 자꾸 만나면 그게 첫사랑이냐?”
자영 씨가 깜짝 놀란다.
아니라예. 지까진 게 무슨 첫사랑이겄습니꺼. 괜히 웃을라고 이럽니더.”
알고 있습니다. 첫사랑인 거.”
나도 능청을 떨었다. 성조가 자영 씨의 손을 잡는다.
보고도 모르냐. 이렇게 좋은 걸? 보고 있어도 또 보고 싶다고 내가 했잖냐.”
그래, 엄청 좋겠다. 아니 부럽다, 부러워.”
걱정 마. 서운이 짝꿍 시켜줄게. 서운 씨 온다고 하지요?”
, . 그리로 오라 했습니더.”
봐라. 온다고 하잖아. 너 오늘 임자 만난 거야.”
느물느물한 성조의 말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런 성조를 위해 조수석을 수줍어하는 자영 씨에게 억지로 양보하고 나는 뒷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성조 왈.
너 눈치 없이 옆에 앉았으면 계곡에 처박아 버릴라고 했다.”
그래, 나도 죽기 싫었어.”
성조는 낄낄거리고 나는 그의 비위를 맞췄다.
지리산은 깊다. 국립공원 매표소를 지나, 도깨비소를 지나, 계곡을 따라 난 구불구불한 도로를 어둠을 헤치며 차는 천천히 달렸다. 고달팠던 옛날이 생각났을까. 성조가 들떴던 입을 다물고 의외로 조용하다. 차창으로 들어온 바람은 향기롭고 감미로웠다.
산은 시끌벅적했다. 계곡의 물소리에, 온갖 산새소리에, 짐승이 짝을 부르는 소리에, 갖가지 벌레소리에, 그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의 싱싱한 숨소리에. 그러나 그 소리가 시끄럽게 느껴지지 않는 건 지리산이 원래 가지고 있는 소리, 욕심도 티도 없는 맑은 소리, 도시에선 느낄 수 없는 자연의 교향곡이기 때문이리라.
우린 얼마 후 혜순이 주인인 개골산장에 도착했다. 여긴 또 다른 분위기로 우릴 반긴다. 더 휘황하고 더 널찍하고 더 깊숙하게.
계곡 비탈을 깎아 만든 3층 건물에 민박은 기본이고 식당과 노래방이 있고 그 옆으로 정자가 있었다. 옥상에는 하얀 바탕에 청색 글씨로 개골산장이란 간판이 매달려 불을 환하게 밝혔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노래방을 표시하는 레온의 불빛은 도시에 사는 내가 매일 보는 것이지만 왠지 낯설게 느껴지고. 주차장엔 피서객들의 차가 가득했다.
밤이 늦어서인지 식당은 텅 비었다. 산채비빔밥, 산채백반, 토종닭백숙, 닭도리탕, 버섯전골, 더덕동동주, 은어회, 은어튀김이 식당 앞 유리에 가지런히 쓰여 있다. 우리는 식당을 지나쳐 정자 쪽으로 향했다. 정자에 앉아있는 세 사람의 모습이 모기장을 통해 보인다. 성조가 자영 씨에게 물었다.
전화 안했어요?”
일부러 안했습니더. 놀래킬려고예.”
그때 정자에서 차 소리를 듣고 우리가 다가가는 걸 보았는지 나시 셔츠에 체크무늬치마를 입은 여자가 일어나 모기장을 제치고 우리에게로 왔다. 풍만한 가슴에 비해 허리는 가늘어 펄럭이는 치마 속 엉덩이가 궁금할 정도였다.
어머! 이게 누구야? 자영이 네가 웬 일이야!”
그녀는 사투리를 쓰지 않았다.
나 말고 여기 보거래이.”
여자가 성조를 보았다. 수수한 자영 씨와는 확연히 비교되는 세련된 파마머리, 옷차림, 짙은 화장이 도시의 냄새를 확 풍기고 있었다. 혜순 씨라 했던가. 오뚝한 콧날에 왠지 모르게 어색하게 쌍까풀진 눈, 벌어진 입이 유난히 커보였다.
어머머머, 김 사장 아냐!”
잘 있었어? 늙지도 않는가봐?”
전화 좀 주지 않고? 이렇게 쳐들어오는 법이 어딨니?”
여자는 성조와 자영 씨를 번갈아보며 입을 다물 줄을 모른다. 여기 같이 살면서도 이게 얼마만이니? 서로 바쁘니까. 놀러왔어? 혜순 씨 보러 왔지. 입에 침이나 바르시지. 진짜야. 둘이 애인 같네? 김 사장이 자영이 좋아하는 줄은 알지만. 무슨 말을 그렇게 하노? 아님 말고. 잘 본 거야. 그렇지? 그런데 이 분은? 혜순 씨가 끝내 나를 쳐다봤다.
아 참, 친군데 작가야.”
맞아. 자영이 니가 얘기했던?”
그래, 맞다 아이가.”
언젠가 같이 오셨었다고요?”
그렇습니다. 성조 친구, 김도후라고 합니다.”
고개를 꾸벅였다. 뒤늦게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아침이 되어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청승맞게 떠있을 달이.
중요한 건 홀애비라는 사실이야.”
성조가 그 말을 왜 안하나 했었다. 이젠 들어도 아무렇지도 않은 그 말을.
그래요? 그럼 서운이 오라 그러자!”
기발한 아이디어네!”
혜순 씨가 큰 발견이나 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자 성조는 시치미를 떼고 맞장구를 쳤다.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이들이 평소엔 드러내지 않는 관음증의 대상이 된 것만 같은.
온다 했다.”
그래?”
그런데 아직 손님 있노?”
아냐, 황 사장하고 노래방 신 사장이야.”
황가? 그 인간이 어찌 여깄노?”
자영 씨가 정색을 하고 십여 미터 떨어진 정자를 보며 물었다.
자주 들른다. 손님도 많이 데리고 오고. 온지 얼마 안 됐어. 올라가자. 김 사장도 소개 시켜 주게.”
벌써 안다 아이가.”
그래? 그럼 잘 됐네, .”
혜순 씨가 앞장을 서자 성조와 자영 씨는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발걸음을 옮겼다. 성조는 어리둥절한 나를 끌었다. 갑자기 분위기가 서늘해진 이유를 난 알지 못했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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