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지리산에는 아재가 산다/8회

박희주 중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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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8.05.15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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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주 시인. 소설가 전북 임실 출신. <월간문학>신인상.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네페르타리소설집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시대의 봉이장편소설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현 부천문협 회장 galbeolheejoo@hanmail.net
* * *

저 새 소리 들리세요?”
안 들리는데예.”
차를 잠깐 세워 보실래요?”
그녀는 말없이 차를 멈추었다. 다시 소쩍- 하자 메아리가 소쩍 했다.
들리잖아요?”
아뇨. 제겐 안 들립니더.”
그녀는 웃었다. 억지웃음이었다. 가속 페달을 서둘러 밟는 그녀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언제 가십니꺼?”
내일은 선유동계곡에 갈 것이고 모레나 안 가겠습니까.”
그녀는 침묵했다. 무슨 말을 할 것 같았는데 입을 다물었다. 선유슈퍼에는 금방 도착했다. 그녀가 떠나가고도 소쩍새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아내여, 미안하다. 더 살아서 미안하다. 사는 게 당신에겐 죄를 짓는 일이구나. 소쩍새 울음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건, 속설처럼 짝을 찾는 피울음이라 믿게 되는 건, 아내에 대한 나의 사랑이 그만큼 깊었다는 것일까.
우린 씻지도 못하고 곯아떨어졌다. 죽음보다 깊은 잠이란 게 이럴까. 떠메고 가도 모를 정도로 곤히 잠든 우리를 새벽같이 깨운 건 아재.
퍼뜩 일어나이소. 세수하러 어서 가입시더.”
세 시가 다 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자영 씨 민박집으로 온 건.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그러나 나보다 술이 약한 성조가 벌떡 일어나 아재를 따라 계곡으로 가잔다. 계곡물에 심신을 담그자고. 무엇이 그리 기분 좋은지 콧노래까지 부르면서. 밖으로 나왔다.
지리산은 한국인의 축복이다. 미명에 봉우리마다 하얀 안개를 품은 지리산. 웅장하면서도 신비한. 참으로 장관이었다. 시멘트 벽 속에 갇혀 잠에 더 빠져들고 싶었던 나의 소심함을 비웃고 싶은, 이 거룩한 성자의 모습은 얼마나 인간의 모습이 하잘 것 없는지 깨우쳐주는 듯했다. 그 품에 거침없이 뛰어들었다. 힌두교도들이 갠지스 강에 몸을 담그는 것처럼, 세속에 찌든 육신과 정신의 때를 벗겨낼 심산으로. 그런데 지랄 같은 어젯밤의 일들이 어지러운 꿈처럼 스쳤다.
성조야, 너 그 약삭바리 어떻게 생각허냐?”
약삭바리라니?”
, 그렇구나. 약삭바리란 이름은 내 마음 속의, 나만 부르는 호칭이었구나. 네가 알 리가 없지.
어제 혜순 씨 짝 말이다.”
으응. 약삭바리라고? 너 정말 이름 한번 잘 지었다. 나도 그 자식 맘에 안 들어. 그 자식이 여기 오고 나서 순진한 약초꾼들 들쑤셔서 다 베려놨다고 하잖아. 약초꾼들이 돈맛을 알아버린 거야. 물론 그 사람들도 돈은 벌어야지. 그렇지만 적당한 선이라는 게 있잖아. 지켜야할 선 말이다. 그게 없대, 요즘. 어제 법대 나왔다니까 더 얄밉더라. 배웠다는 놈이 왜 그래? 그렇다고 내가 어쩔 수도 없고. 혜순이는 벌써 넘어간 것 같더라. 그 새끼한테.”
바람이 불자 소름이 돋았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연못을 헤집고 다니며 물을 흐리는 걸 보았다. 아무도 제지할 수 없는. 안타까웠다.
아재는 물 몇 번 얼굴에 찍어 바르더니 오던 길로 되돌아갔다. 원래 그런지, 아니면 술기운이 없어서인지 통 말이 없었다.
물은 차가웠다. 머리까지 푹 담갔다. 숨을 멈출 수 없을 때까지 몇 번을 들어갔다 나왔다. 안개가 산허리부터 서서히 하늘로 오르고 있었다. 드러난 산의 표정은 장엄했다. 나는 얼마만큼 작으냐. 사람의 짓이란 게 얼마나 하찮은 것이더냐.
내 벗은 몸뚱어리는 참으로 보잘것없이 초라하고 피부는 탄력을 잃은 지 오래. 욕망의 근원, 아랫도리는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쪼그라들어 부끄럽고 부끄러워서 물속에 재빨리 숨겨야 했다.
내 평생 이같이 이른 새벽에 내 몸이 쏙 들어가는 자연석 욕조에서 발가벗고 몸을 담글 수 있다는 건 분명 행운이었다. 흐르는 물은 강했다. 움직이지 않는 바위는 약했다. 나는 지금까지 강한 바위, 단단한 돌이라는 이미지를 씻겨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이젠 아니다. 물의 끈기. 물은 돌보다 강하다. 그리고 물은 예술가였다. 흐름이 작업이고 흐름이 세월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나의 집 욕조보다 부드럽게 바위를 파낼 수 있었을까. 얼마만큼 세월이 흘러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예술이 될까.
, 이 경건함을 동반한 상쾌함. 지리산 영봉들의 정기를 흠뻑 받으며 자라나는 칙칙한 수목들, 넝쿨들, 풀잎들. 그것들이 뿜어내는 산소를 한껏 마시며 그 뿌리들이 머금었던 물기에 몸과 마음을 씻을 수 있다니, 성조야 진심으로 감사한다.
자영 씨는 우리들의 밥을 벌써 챙겨 놨다. 그리고 선유동계곡에서 우리가 필요한 것들을 보따리, 보따리 가득 싸 놨다. 세세세 친구에 대한 성의가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성조와 그녀의 사랑(?)은 순수하고 실로 아름다웠다.
선유동계곡은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 입산금지구역이었다. 그러나 아재와 성조는 그곳에 살았었다는 이유로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있다니 믿을 밖에.
계곡은 밑에서부터 더듬어 올라갈 수도 있지만 절경을 쉽게 보려고 다리 건너 매표소를 지나 200여 미터 쯤에서 오른쪽 산비탈로 올라갔다. 산을 오르다보니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게 생긴 곳에 축대나 주춧돌 같은 주거지 흔적들이 보였다. 뭘 바라고 이런 곳에서 살았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능선에 올라 곧장 우측으로 난 산길을 쭉 가게 되니 바로 아재와 성조네가 살았던 집터가 나온다. 그 부근이 또한 절경이었다.
어릴 땐 몰랐단다. 여기가 저토록 빼어난 줄을. 오직 배고프고 고달픈 곳으로만 알았단다. 지금은 무수한 수풀로 덮여있는 집터에는 참으로 멋들어진 배롱나무가 있고 토종 밤나무가 있고 늙은 돌배나무가 몇 그루 있었다.
오면서 본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기 위해 어지럽게 설치한 무수란 파이프라인. 어떤 자는 건강을 챙기고자, 어떤 자는 돈을 챙기고자 환장해버린, 여기저기, 인간이 저지른 추악한 모습들. 지리산을 진정으로 봤다면 이런 짓거리는 하지 못할 것인데, 눈앞의 이익에 산은 멍들고 상처만 남아 마냥 안타까울 뿐. 나만의 감상일까.
우리는 집터 밑 계곡에 자리를 잡았다. 아내도 와봤던 곳. 내 아들 꼬맹이가 즐거워하던 곳. 그 흔적, 흔적들은 고스란히 그대로였다. 가슴이 미어지고 눈이 시리게, , , , 한 걸음, 또 한 걸음 다가오는, 도저히 멈춤이 안 되는 죽음의 그림자에 어떻게 초연할 수 있었으랴. 그 쓸쓸한 미소, 그 안타까운 표정. 얼마나 저렸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왜 하필 아내였을까. 손바닥 뒤집어엎듯이 쉽게 일어나는 삶과 죽음. 이제 나는 울지 않으련다. 과거에 연연하지도 않으련다. 모두가 부질없음에. 그러나 아름다웠던 추억은 잊을 수가 없으니. 그러기에 나도 나약한 인간인지라 흔들릴 때마다 술에 의지했었고 침잠의 늪에 한없이 빠져들었다. 위안이 되었을까? 천만의 말씀. 고통은 배가되고 아이들을 생각하면 멀고 먼 내일에 대한 자신만 사라졌다.
선유동(仙遊洞). 계곡은 이름만큼이나 내려가도 절경이고 올라가도 절경이다. 한번 오르기 시작하면 경치에 도취되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는 심정을 가눌 수 없어 결국엔 정상까지 오르게 된다고.
수만, 수억의 세월 동안 물에 씻기고 부딪혀서 만들어진 기기묘묘한 형상들, 그것이 크든지 작든지. 어디 하늘에 빛나지 않는 별이 있으랴. 그게 밝든지 희미하든지 나름의 의미는 있을 것이니. 선유동 계곡의 바위들은 하나하나가 나름대로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우린 챙이소() 곁에 짐을 풀었다. 챙이소란 이름은 챙이()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게 분명할 테고.
나와 성조가 이름을 붙여준 곳도 있다. 비아그라 폭포. 전에 왔을 때 챙이소 아래 2미터 높이에서 물이 떨어지는 작은 폭포가 있는데 옷을 홀라당 벗고 물줄기를 맞으며 서있으니 서서히 내 남성이 부풀어 오르는 게 아닌가. 하도 신기하여 성조에게 얘길 했더니 내가 너무 굶어서 그렇다나. 웃기지 말라고, 정말이라고 서로 우기다가 내가 내길 하자 하여 성조도 서본지라, 얼마 안 있어 하는 말.
어허! 진짜네?”
그래서 내가 만 원을 따먹었다.
우린 바위 그늘에 자영 씨가 싸준 것들을 풀었다. 과연! 넉넉한 술이며 상추와 깻잎, 초고추장, 라면 등등.
야 도후야, 얼마나 정성이 갸륵허냐. 같이 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또 자랑이다.
그래, 눈물 난다. 아예 여기서 눌러 살아라. 죽을 때까지 세세세나 하면서.”
그러고 싶지만 그럴 순 없지. 샘 나냐?”
에라 미친놈. 홀아비 생각한다는 건 다 핑계고 너 자영 씨 보고 싶어 왔지?”
성조는 웃었다. 속마음을 들켰는지 고개를 세차게 흔들면서.
아녀, 절대로 그것이 아녀.”
아니긴 개똥이 아녀?”
그나저나 서운이랑 잘 될 것 같으냐?”
나랑 결혼하자니까 택도 없단다.”
? 진짜 미친놈이네.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처음 만나자마자 결혼하자는 놈이 세상에 어딨냐? 농담하지 말고 제대로 얘기해봐.”
친구하기로 했다. 그래야 너 모르게 나도 여기 올 수 있는 것 아녀?”
이게 벌써부터 똥구멍으로 호박씨 깔 생각만 하고 있네.”
화개 장서운이 말하는 깁니꺼?”
밥에 된장을 버무리던 아재가 끼어들자 성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국입니더. 참 참하지예. 혼자 산다꼬 덤볐다가 큰 코 다칩니대이.”
그래요? , 니 코는 아직 멀쩡하니까 됐다. 아무래도 너 만나려고 여직 독수공방했던가보다.”
쉽지 않을 깁니다. 재혼할라캤으면 진작 했을 깁니더. 진수란 놈이 망신 안 당했습니꺼.”
진수가 누군데요?”
거 안 있습니꺼. 전에 송이 사먹었다던 기생오라비 같이 생긴 놈아.”
, 그 친구가 진수요?”
약삭바리는 안 끼는 데가 없었다. 내가 이름 하난 잘 지었다.
과부란 걸 알고 지가 돈 좀 벌었으니까 혹 하고 달려들 줄 안 모양이지예. 매일같이 가게 와서 수작 거는 걸 서운이가 못 보겠는 기라. 그래 사람들 많을 때 당신 같은 사람 트럭으로 와도 안 반가우니까 얼씬도 말라꼬요.”
성조는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아이고, 시원해라.”
그거 아주 잡놈입니더.”
그랬다. 어젯밤에 서운 씨는 약삭바리에게 눈길 한번을 안 줬다. 내 어깨에 고개를 묻었던 것도 그치를 보기 싫어서였을까?
서울에선 한 가락 했다 하대요?”
하이고 말도 마이소. 징그럽스니더.”
아재는 무슨 말을 더 할까 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부근에 숨겨 놓았던 고기 병을 찾아와 버무린 된장을 넣어 물속에 던져 놓고는 산으로 올라갔다.
고맙다고 해라 도후야, 내가 제대로 된 여자 소개했지? 여자가 그런 맛이 좀 있어야지.”
그래, 고맙다. 눈물이 날 정도로.”
그러나 나는 여자에 대한 간절함이 없다. 아내에 대한 간절함밖에는. 아내는 아직도 내 심중에 뚜렷이 남아 나를 간섭하고 있잖은가.
성조와 나는 옛일을 되새기며 비아그라 폭포의 흥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한참 동안 배꼽을 잡았는데 고기 병을 보니 벌써 하나 가득 들었다. 얼른 꺼내어 작은 웅덩이에 쏟아 부으니 너무 많았다. 더 던질 필요가 없을 만큼. 강의 피라미와는 빛깔부터 다른 선유동의 물고기.
우린 군침이 돌아 고기 배를 따서 초고추장에 푹 담가 입에 넣었다. , 이 고소한, 쫄깃한, 어떤 강에서도 느낄 수 없는 감칠 맛! 다시 이번엔 깻잎에 싸서 소주 한잔에 입에 쏙, 기가 막히다. 실상 우린 이 맛을 못 잊어 지리산에 왔는지도 모른다.
아재가 내려온다. 멀리서도 그의 몸에서 풀풀 배어나는 향기는, 아 그 향기는 도시에선 감히 맡아볼 수 없는 진향의 더덕.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그리 많이 캐었을까. 지리산 귀신은 귀신이었다.
우린 계곡을 만끽했다. 계곡을 이루는 식구들, 소나무, 밤나무, 층층나무, 때죽나무, 피나무, 단풍나무, 생강나무, 옻나무, 싸리나무, 개암나무, 조팝나무, 화살나무, 두릅, 진달래, 철쭉 같은 큰키나무에서 작은키나무, 떨기나무와 원추리, 더덕, 잔대, 도라지, , 머위, 고사리, 다래, 칡넝쿨, 취나물까지 제각각의 이름을 달고 새롭게 다가왔다. 무조건 참나무라 불렀던 것들도 떡갈, 갈참, 신갈, 상수리, 굴참, 졸참나무로 지평을 넓혔다. 식물도감에서 아리송했던 것들이 내가 누구라고 소리를 질러 내 눈을 깨웠다. 계곡은 이렇게 다양한 소리로 깊이를 더해왔을 것이다. 성조는 그 옛날의 고달픔까지 안주를 더해 세월의 더께를 곁들여 술맛을 즐겼고 아재는 자신을 이해해주는 오랜 친구를 위해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어 기뻐하며 마셨다.
아내여, 당신도 지금 나와 함께 하겠지. 당신과 내가 보았던 저 돌배나무와 동글동글한 바위들이 펼치는 이 여름을 보는가. 바닥이 훤히 드러나는 소에서 우리 꼬맹이가 미역을 즐기며 즐거워하던 모습을 기억하는가. 나는 알 수 있다. 지금 환하게 미소 짓고 있는 당신의 모습을. 하늘이 저렇게 맑은 건 당신이 나를 보며 함께 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인가. 나뭇잎을 살랑거리게 하는, 보이지 않는 바람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나도 당신을 느낀다. 온몸으로. 온 가슴으로.
우린 아재가 캐온 더덕을 손톱으로 껍질을 까 고추장에 찍어 먹었다.
아재가 캐왔던 더덕 중에서,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속에 물이 차있었어. 산삼에 버금간다는 물 찬 더덕. 그걸 당신은 씹었지. 암세포가 사라져가는 기분이 들더라고? ! 그때까지도 희망이 있었다.
산새가 알을 낳는 신비. 매미가 처절하도록 짝을 부르는 노래. 숨어서 우릴 보고 있을 온갖 짐승들. 아무도 모르게 누군가를 위하여 자라는 약초들. 천대 받으나 결코 의미를 잃지 않는 고염나무, 돌배나무. 소에서 노니는 물고기. 심지어 크고 작은 돌멩이까지. 술과 함께하는 지리산의 선유동계곡은 우리에게 모든 걸 보여주었다.
우린 모두 옷을 벗었다. 아랫도리는 물에 잠기게 하고 스스로 신선이 되고자 했다. 세상시름은 모두 잊은 채, 아니 잊은 척 하며. 그런데, 우리가 세속에 있음을 일깨우는 광포한 목소리가 들렸다.
선기 이 개새끼야!”
약삭바리였다. 살기등등하여 한손에 약초 캐는 호미, 또 한손엔 날이 하얘서 더 섬뜩한 낫을 들고, 얼굴이 시뻘게져서, 헐레벌떡, 헐레벌떡, 뛰어오다 칡넝쿨에 발목이 걸려 비탈에서 앞으로 고꾸라지더니 그의 잘 굴러가는 산타페처럼 돌진해 왔다.
! 너 이 개새끼! 죽을라고 환장했지!”
무슨 일인가? 나와 성조는 그가 가소로운데, 아재도 가소로웠을까. 고기를 고추장에 찍어 한손에 들고 다른 손엔 술잔을 들어 못 본 척, 못 들은 척 태연하게 먼 산만 바라보다가 그 자가 막 우리 자리에 도착할 즈음 술을 입에 털어 넣고 안주를 씹는다. 정말 맛있게.
그러나 약삭바리는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아랑곳없이 아재에게 발길질을 하고 미처 말릴 틈도 없이 호미와 낫을 팽개치더니 아재를 챙이소에 처박아버렸다. 그때서야 나와 성조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쏜살같이 일어나 팔을 꺾고 정강이를 타격하여 약삭바리를 꼼짝 못하게 주저앉히고 낫과 호미를 멀리멀리 던져버렸다.
야 이 양반아,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다짜고짜 폭력을 써! 우리는 허수아빈 줄 알어? 당신도 나한테 당해볼 거야?”
성조는 체구는 작아도 합기도가 4단이다. 그러나 그는 성조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 조용한 선유동이 들썩이도록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다.
저 쌍놈의 새끼는 죽어야 돼. 야 거러지 새끼야, 남 잘되는 게 그렇게도 배 아프더냐? 왜 남의 일을 망치고 지랄이야!”
그때 아재는 물속에서 엉금엉금 기어 나왔다. 이 자가 이 정도로 화를 낼 때는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일이 있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성조는 금방 태도를 바꿨다.
자자, 그러지 말고 술 한 잔 하면서 자초지종을 말해 봐요.”
성조는 종이컵에 술을 가득 따랐다.
당신들이 참견할 일이 아니오. 사돈 논 사는 것 배 아파하는 저 개새끼하고 해결할 일이오.”
그래도 약삭바리는 성조가 주는 술을 받아 단숨에 마신다. 아재는 바위에 걸터앉아 이산 저산 지리산의 영봉들만 바라보는데, 어차피 벗은 몸인지라 시원한 미역을 즐기다 햇빛에 물기를 말리며 피부를 태우는 것처럼 우리가 봐왔던 아재를 넘어 부처처럼 태연자약할 뿐.
, 호로상놈의 새끼야! 나한테 무슨 억하심정으로 그런 짓을 한 거여. 뚫어진 입으로 말을 해봐, 이 촌놈의 새꺄. 나는 그래도 너한테 한다고 했어. 너 먹고 살으라고 니 물건 팔아줄라고 했어.”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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