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12-01(화)

한계령을 위한 연가 - 9회

박희주 중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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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8.12.26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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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9일 이 나라 대통령선거가 있던 날, 드디어 상현오빠로부터 전화가 왔다. 낯선 번호였다.
“정은이니?”
그 한마디에도 그라는 걸 대번에 알 수 있었다.
“그래 오빠. 나야, 정은이.”
금방 내 목이 메고.
“보고 싶다. 많이, 아주 많이.”
“나도야, 오빠. 많이, 아주 많이.”
사랑을 느끼는 데엔 많은 말이 필요치 않다. 어감만으로도, 숨결만 들어도 족했다. 일본 출장 중이란다. 이제야 메일을 보고 전화한다며 감격해했다. 바로 돌아올 거란다. 내가 너무 긴장하고 있었던가. 전화를 끊자 일시에 피로감이 밀려왔다.
나는 이번에도 보수의 편을 들지 않았다. 출신지에 대한 심정적인 끌림이 아니었다. 내 생애 최초로 선거에서 의지를 드러냈다고 봐야 했다. 출구조사는 보수의 승리를 예상하고 있었고 개표 결과는 단 한 번도 진보가 앞서는 걸 허락하지 않다가 끝내 보수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세상인심은 기득의 보호막을 슬그머니 감춘 채 허울 좋은 애국이라 포장하여 변화가 위험을 동반하리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진보에게 패배를 안겼다. 한 시민의 말이 여운을 남겼다. 우리는 망각의 유령에 싸여 헤쳐 나오지 못하고 있다. 친일을 망각했고 독재를 망각했다. 우리의 현대사는 망각의 역사라는.
나는 내 사랑을 망각하지 않았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리라. 설령 진실을 안다 한들 세상의 눈은 이런 나를 위험하다고 하겠지. 꿈에서 깨라고, 어리석다고,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사랑타령이고 십대의 유치한 감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느냐고, 세상을 헛살았다고 매도하겠지. 그래 헛살았다. 나는 내가 아니었다. 맘껏 비웃을 테면 비웃으라지. 이제부터라도 나는 나를 위해 살 것이니.
텔레비전에서 하루 종일 보수의 승리를 떠들어대던 20일이 지루하게 지나가고 마야달력으로 지구가 멸망한다는 21일, 드디어 우린 만났다. 어제까지 맑았던 날씨가 우리의 연가를 위함인지 오전부터 싸락눈이 내리고 있었다.
“아무 소리도 하지 말아요, 오빠. 우리는 그냥 우리가 헤어졌던 시간 이전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모든 인사를 생략한 채 아파트 입구까지 찾아온 그의 차속으로 빨려 들어가자마자 내가 한 말이다. 나는 완전무장을 했다. 털모자와 장갑과 두꺼운 파커, 지팡이까지.
“그대로구나.”
“오빠도 그대로야.”
우린 눈도 껌벅거리지 않고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옛날일 수 없는 모습을 애써 그대로라고, 달라진 게 없다고 이심전심으로 말했다. 싸라기눈은 어느새 함박눈으로 변했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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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입을 달싹였을 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만의 세상이었다. 휴대전화의 전원도 껐다. 내 행동을 설명하기가 싫었고 어떤 간섭도 받고 싶지 않았다. 주방의 식탁엔 메모를 남겼다. 나를 되찾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는. 진부하나 사실이잖은가. 내일은 결정된 게 아무것도 없지만 두렵지도 않았다.
그는 두꺼운 파커는 뒷자리에 두고 체크무늬 남방에 카키색 조끼를 걸치고 골이 진 바지를 입은 채 운전했다. 무엇이 그리 힘들었을까, 얼굴은 팽팽했으나 머리가 반백을 넘어 올백에 가까웠다. 그것은 눈가의 잔주름과 함께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부정할 수 없는, 우리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계속 흘렀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의 흰머리가 신기하게도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서울을 벗어나 북한강을 따라 경춘가도를 지나는 내내 눈이 내렸다. 강은 눈을 온몸으로 받아 속으로 흔적도 없이 빨아들였다. 내가 그랬었다. 그의 사랑을 시공간을 초월하여 온몸과 온정신으로 받아들이고 내 것으로 만들었었다. 그도 그랬을 것이다. 우리는 강이고 또한 눈이었다.
“같이 살아야겠어요.”
오랜 침묵을 깨고 내가 한 말이다. 침묵도 우리의 오랜 공백의 산물이었다. 예전엔 침묵이 어색하다는 걸 느낄 새가 없었다. 나는 지금 그에게 하려 했으나 하지 못했던, 동거하자는 말을 하기 위해 만나고 있는 것이다. 이십 수년을 거슬러 올라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보수에 반발하여 어쩔 수 없이 우리의 결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도록. 그러기 위해선 아이를 빨리 만들어야 했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이리. 격정을 참기 힘들었는지 그가 갓길에 차를 세웠다.
“나야 좋지만 괜찮겠어?”
그의 목소리는 떨렸다.
“오빠만 좋다면 나야 상관없어요.”
“정은이가 곤란해지는 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야.”
“다 감수할래요.”
“이런 날이 오게 되리라는 걸 간절히 희망했지만 현실로 다가오다니,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된 것조차. 내 인생은 결정적인 순간에 내 바람과는 다르게 꼭 틀어지기 일쑤였어. 영화에서 본 것이지만 그 격정이 지금의 내 심정과 너무 생생하게 닮았구나.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우주에서 나의 이런 확실한 감정은 단 한 번만 온다고 믿어. 몇 번을 다시 산다 해도 다시는 오지 않을 거야. 정은이를 사랑해. 깊이, 완벽하게, 그리고 영원히.”
아, 불륜의 전설이 된 영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 나오는 로버트 킨케이드의 명대사를 그가 읊조리고 있었다. 첫눈에 빠져든 두 사람. 이미 중년에 이른 그들은 그동안 살아온 시간을 같이 나누지는 못했어도 앞으로 살아갈 시간만은 함께 하기로 결심한다. 세상사의 잣대로 엄연한 불륜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그 무엇도 갈라놓을 수 없을 것같이 여겨지던 격정적인 그 사랑은 프란체스카의 남편과 아이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끝내 이루어지지 못한다. 함께 떠나리라 철썩 같이 믿었기에, 프란체스카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쏟아지는 비를 아랑곳하지 않고 온몸에 비를 흠뻑 맞은 채 기다리고 기다리다 끝내 돌아서야만 하는 로버트의 처절하고도 망연한 표정을 잊을 수가 없었다. 나도 죄책감이 없을 리는 없다. 아내의 진정한 사랑을 받지 못한 남편도 희생자일 수 있으니까. 나의 진실을 안다면 남편은 그 얼마나 억울할까. 속아 살아온 내게 그 얼마나 치가 떨릴까. 아이들이 받아들일 혼란도 부산물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사기꾼이고 파렴치한이다. 이런 게 우주의 애매함일까. 빛이 있으면 반드시 어둠이 있기 마련인. 로버트의 사랑이 빛이라면 로버트의 아내(있었던가, 없었던가?)가 느껴야 할 절망은 어둠이다. 프란체스카의 사랑이 진실이라면 그녀의 남편이 갖고 있는 사랑은? 나도 나의 확실한 감정을 프란체스카의 대사로 실토하고 있었다.
“숨 쉬는 간격이 길다고 느껴질 만큼 오빠가 보고 싶었어요.”
이러한 프란체스카에 비해 그녀의 남편이 느껴야할 배신감은? 어디서, 누구에게, 어떻게 보상 받을까? 정답이 없는 이 애매함. 이 지독한 이기심. 아, 생각지 말자. 나는 나만이 알 수 있는 도리질을 해댔다. 이윽고 아련했던 숨결이 느껴지고 그의 입술이 내 얼굴 전체를 누볐다. 감동이었다. 다시는 놓치지 않으리라. 나도 숱하게 입술도장을 찍고 또 찍었다. 지나가는 차의 경적이 짓궂게 울렸다. 그제야 우리는 떨어졌다.
눈은 필사적으로 앞 유리에 몰아쳤다. 윈도브러시가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차량들의 속도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춘천을 지나 추곡휴게소에서 우리는 바퀴에 체인을 감고 늦은 점심을 먹었다.
“보금자리는 어디로 하면 좋을까?”
내 어깨를 안고서 차로 돌아와 그가 한 말이다. 아까와는 달리 많은 여유가 느껴졌다. 우린 이십육 년 전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때는 들어보지 못했던. 같이 살려면 당연히 그게 순서겠지.
“오빠가 좋을 대로, 함께 살 수 있는 곳이면 아무 데도 상관없어요.”
“정말?”
“그럼요.”
차가 다시 출발했다. 우리의 의지는 확고했다.
“우리의 내일을 방해하는 에고의 세력들이 있을지라도 절대로 꺾이지 말아요.”
“나는 정은이가 아니고는 내일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
이 말을 기다렸다. 도덕과 윤리와 사람의 도리를 앞세운 표피만 그럴 듯한 엄숙주의자들이 우리 길을 막아설지라도 멈추지 않을 거라는.
“내 안의 윤리와 패배주의에도 초심을 잃지 말아요.”
“제발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한계령은 우리의 신혼여행지예요.”
여기는 해발 900M입니다. 인제를 지나 44번 국도를 따라가자 오르막 끝에 드디어 팻말이 나타났다. 한계령. 도착했을 때는 다섯시도 되지 않았는데 이미 날이 어둑해지고 눈발은 가늘어졌다. 차에서 내리니 바람이 거세게 눈을 흩날리게 해 얼굴을 차갑게 때렸다. 눈은 제법 쌓였으나 그렇다고 차가 다니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에겐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할 상황이어야 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바드라재라 기록돼 있고 국도가 생기기 전에는 오색령이라 불리던 고개. 그 한계령휴게소 광장에서 우리는 문정희의 시가 주는 우리만의 간절함을 한동안 음미했다. 저녁어스름에 드러난 설악의 기암괴석들, 멋들어진 나무들, 눈이 만들어낸 장관, 거기에 딱 어울리게 자리 잡은 휴게소 건물은 신비하고도 황홀한 풍경이었다. 우린 어느새 이심전심으로 양희은이 부른 <한계령>을 흥얼거리고 있었다.
 
저 산은 내게
우지마라 우지마라 하고~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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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주 시인. 소설가. 전북 임실 출신. <월간문학>신인상.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 『네페르타리』 소설집『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시대의 봉이』 장편소설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  『싹수가 노랗다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현 부천문협 회장
 galbeolheejo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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