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07-12(일)

물에게서 듣다 / 김철기

유네스코 문학창의 도시 1주년 기념기획/ 홍영수 시인의 부천의 문학향기

댓글 0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밴드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기사입력 : 2020.03.04 17:05
  • 프린터
  • 이메일
  • 스크랩
  • 글자크게
  • 글자작게
 2017년 10월 부천시는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유네스코 문학창의 도시로 지정되었습니다. 문학창의 도시 지정 1주년을 맞아 <부천 시티저널>에서는 홍영수 시인의 "부천 문인들 문학의 향기"를 독자들과 함께 하고자 합니다.      

 

물에게서 듣다 / 김철기  


흐르는 결로 하여 때로

일그러지는 모습에

꼭 슬퍼할 일 아니라 하네

 

타인으로 하여

메워주고 돌아가다

더뎌지는 길 역정 말라하네

 

버겁게 곁줄기 밀고 들어도

밀쳐내기보다

비켜서 세 불어나는 융합의 뜻 헤아리라네.

 

평상심으론 속 치밀어 더는, 더는

그런들 멈추거나 역류하지 않는

수심水心의 언어를

 

걸핏 사람 관계에 이는

격랑, 풍파, 홍수, 해일 등

속살 경련할 원초의 자존 울컥거릴 때

 

매번 몸 낮추고 여과함이 일상이라

나직나직 혹은 악센트 찍어주는

, 물에게서 듣는다

 

김철기 제10시집 <노을 순백으로 웃다>. 한누리 미디어. 2011.

 

도담삼봉신문2020년 1월.png

 

---------------------------------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합수머리, 아주 오래전 양수리에서 낚시하고 민물조개 잡던 생각이 난다. 그러나 지금은 그 자리에세미원洗美園이라는 곳이 있다. 장자에 나오는 관수세심 관화미심(觀水洗心 觀花美心)”에서 따온 글이다.‘上善若水가 말해주듯 이라는 물질은 시대와 세대를 초월해서 우리에게순리의 이미지로 다가왔다. 일찍이 탈레스도 "물은 만물의 근원임"을 밝힌 바 있다.

 

시인은 이와 같은 물의 특성 즉 순리에 순응하는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다. 굽은 곳은 굽은 대로, 웅덩이를 만나면 고이고, 차면 다시 흐르는 순연하는 물의 물리 앞에 슬퍼함도, 역정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물의 언어를 통해 가슴의 눈으로 듣고 마음의 귀로 보고 있다.

 

우리의 삶에서 때론, 거울 속에 비친 나를 보고, 메아리 되어 돌아오는 내 목소리를 들으면서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이때 비로소 변증법적인 나와의 대화가 시작된다. 그리고 새벽을 일깨우는 산사의 종소리, 그 맥놀이의 울림 등이 내 삶의 공명통에 깊이와 폭을 더해주게 됨을 느끼는 것처럼, 화자는 역류하지 않는 수심水心의 심연에서 언어를 건져 올려 내성內省의 시간을 갖고, “융합의 메시지를 통해 밀쳐내지 않고 비켜선 자세로 자신을 헤아리고 있다.

 

한마디로 한 발 물러서서 아님 한 계단 올라서서 객관적인 대상 자체가 되어 자신을 되돌아보고 있다. 여태껏 잊고, 잃어버렸던 내면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들여다보며 자신을 재발견하는 것이다. 데카르트의 언어에 빗대어 보면 나는 듣는다, 고로 비로소 나를 발견한다.”

 

우린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감당할 수 없는 풍파와 어찌해볼 도리 없이 밀려든 걱정과 수심의 해일 앞에 눈앞이 캄캄해지는 상황을 맞이한다. 이럴 땐 인간이기에 참을 수 없는 분노와 몸이 부서지는 강한 경련을 겪기도 한다. 그러나 화자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자신을 낮추면서 몸과 마음의 필터를 통해 심신을 옥죄는 것들과 혈류의 혼탁함을 여과시키고 있다. 또한 나직나직하면서도 때론 강하게 뒤통수를 후려치며 몽매한 뇌를 깨우쳐주는 죽비의 가르침을 배우고 있다. , 물의 몸짓과 언어에서.

 

남이 생각해준 대로, 남이 하란대로 하고, 친구가 고가의 옷을 사면 따라 사고, 누군가 깃발을 들면 따라 들고, 누군가 광장에 모이면 따라 모여서 두부모 자르듯 편 가르는, 스스로가 아닌 외적 영향에 좌우되는 삶을 일컬어 하이데거는 비본래적삶이라 했다.

 

그러한비본래적 삶을 차 버리고 순리에 역행하지 않는 물, 영혼을 깨우고 심신을 씻어주는 물의 언어를 배우고 귀담아 들어야 하다. 종교적 용어로 세미한 언어에 귀 기울이는 것, 이것이 眞我를 찾아가는 즉본래적 나로 되돌아옴이 되는 것이다.

 

이렇듯 화자는 마지막 연 마지막 행에서 , 물에게서 듣는다.”라고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고정되고, 피아를 구분하는 이분법적인, 그리고 자아주의적인 세계관에 변화가 옴을 ’, 물을 통해서 듣고 있다. 그렇게 해서 세계관의 변화가 오는 것을 느끼며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고 있다. 순수의 물 한 모금으로 굽은 지혜의 허리를 펴고 있다.

  

폴 발레리(1871~1945) 시를 보자

 

거룩한 총명, 투명한 바위, 생명의 불가사의한 원동력, 만능인 물아, 나는 기꺼이

끝없는 연도로써 너에게 경의를 표하겠다.

 

나는 조용한 물을 말하겠다, 그것은 경치들의 더할 나위 없는 호사이며, 물은 거기다 절대적인 고요의 자리를 펴고, 그 순수한 수면 위에서는 비추어진 만물이 저 자신보다도 더 완벽하다. 거기서는 자연 모두가 나르시스가 되어, 자기를 사랑하고

 

움직이는 물, 부드럽고 사납게, 스며들며 또 놀랍도록 천천히 훼손시키며, 제 무게로 또는 제멋대로인 흐름과 소용돌이로, 안개와 비로, 시내로, 큰 폭포와 작은 폭포로, 바위를 만들고, 화강암을 닦고, 대리석을 갈고, 조약돌을 무한정 둥글리고, 제가 만들어낸 모래 모두를 얼러가며 푹신한 자락과 편편한 모래톱을 마련하는 물. 물은 단단한 땅의 어둡고 거친 모습을 다듬고 갖가지로 둔갑시키고, 조각하고 장식해준다.

- < 물의 예찬, in Praise of Water>의 일부 -

  

홍영수 시인jisrak@hanmail.net

 

 

 

 

 

 

 

 

태그

전체댓글 0

  • 74904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물에게서 듣다 / 김철기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