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09-20(일)

쑥부쟁이 재수아재/안귀선

유네스코 문학창의 도시 1주년 기념기획/ 홍영수 시인의 부천의 문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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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3.28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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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10월 부천시는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유네스코 문학창의 도시로 지정되었습니다. 문학창의 도시 지정 1주년을 맞아 <부천 시티저널>에서는 홍영수 시인의 "부천 문인들 문학의 향기"를 독자들과 함께 하고자 합니다.      

      

쑥부쟁이 재수아재/안귀선 

   

가을 하늘 가득

만국기가 헹가래를 친다

술 한 잔에 어깨를 덩실 들어 올려

벅구를 치며 고깔모자들 속으로 들어가는

재수아재도 이런 날은 더없이 좋다

 

언제나 마을에 궂은일이 생길 때는

재수아재의 발이 바쁘다

서당 아래채에 얹혀사는 재수아재를 마을 사람들은 어이 재수라고 불렀고

넉넉한 웃음에 이순이 훨씬 넘은 재수아재는 화를 내는 법이 없다

 

어느 날이던가

재수아재네 집 방문이 밖으로 잠기고 대못이 쳐져있던 날 아침

마을은 어수선했고 한동안 누구도 잠긴 문을 열지 않았다

누군가는 딸을 시집보내기 위해 신분 탈피로 떠났다고 했고

또 누군가는 행실 나쁜 아들 때문이라고도 했다

해거름

덩실 어깨를 들어 올리고

벅구를 치며 오던 서당 재수아재가

마을 어귀에 진한 보라색 쑥부쟁이로 서 있다

      

쑥부쟁이 재수아재’, 계간 시와늪 제45(가을호), 2019

 

 

사본 -벅구춤.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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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고향은 전남 해남이다. 어렸을 적 마을의 대동제나 또는 모내기, 수확기에는 의례 굿판이 벌어졌다.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이 뒷방양반이다. 이름도 모르고 어디서 왔는지도 모른다. 다만, 산 밑 토담집에 혼자 살았다.

 

이 분의 출신성분은 상쇠로 가름할 뿐이다. 두레나 농악에서 꽹매기(꽹가리)를 치며 판을 선두에서 이끄는 사람이 상쇠이니, 일상의 신분은 뒷방양반이고 굿판에서는 안방양반이었다. 어느 날 아무도 모르게 논수밭에 활짝 핀 개망초를 수북이 남겨놓고 향기만 가지고 어디론지 가고 없었다.-지금 거실에 소품으로 걸어놓은 꽹매기를 보면 그 시절이 떠오른다.-

때는 가을, 청명한 하늘 아래 많은 깃발은 풍요의 계절을 안고 헹가래 친다. 호남우도농악 해남의뒷방양반이 호남좌도농악의 남원에 쑥부쟁이의 향기가 되어 재수아재로 활짝 피었다. 해남 꽹매기를 떠나 남원에서 벅구를 치며 신명이 난다. 좌우도 농악의 정체를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우도농악이 급하면서도 절제되어있다면 좌도농악은 버들가지처럼 휘어 늘어지고 낭창거린 가락이다.

 

화자는 눈앞의 풍물을 보며 신분을 알 수 없는 재수아재를 통해 마을 공동체 의식을 느끼며 넓게는 한민족 뿌리 깊이 흐르는 신명의 유전자를 시인의 눈으로 보고 있다.

 

잡색들의 호응에 조롱을 열고 나온 새처럼 더욱 신이 난 재수아재, 거기에 탁배기 한 사발 걸쭉하게 들이켜면 흥은 흥에 취한다. 절정에 으르면 흥은 흥을 떠나 忘我의 엑스타스에 이른다. 들썩거린 어깨엔 홀아비의 고독과 외로움이 소고에 얹혀 황홀경에 이르고, 벅구춤을 추는 재수아재는 고깔을 쓰고 상모놀음, 자반뒤집기에 신명이 난다. 이럴 때 동네 뒷산의 봉우리도 후끈후끈 달아오른다. 화자는 이 엄청난 RPM속 놀이와 소리의 굿판에서 다름 아닌 화엄의 판놀음을 보고 있다.

 

아재라는 호칭은 특히 전라도 지방에서는 촌수의 높낮이가 없고, 친근한 동네 삼촌 같은 이미지를 떠 올리는 단어이다. 착한 맘씨에 동네 좋고,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스스로 나서는 사람이다. 이순에 접어든 나이임에도 분명히 남녀노소 불문하고 아재라고 불렀을 것이다.화자에겐 이러한 모습으로 재수아재가 다가왔을 것이다. 또한재수라는 호칭은재수가 좋다라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어느 누구든 이미지가 중요하다. 사람은 이미지가 훼손당하면 참기 힘들다. 때론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기까지 한다. 때론 모욕감이나 분노까지 느끼는 게 이미지와 관계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민할 수밖에 없다. 재수아재, 남에 비치는 자신의 이미지, 더욱이 홀로 된 삶과 더불어 자식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 그리고 신분을 탈출한다는 것은 기존 이미지의 탈바꿈을 의미한 것이리라. 화자는 사려 깊은 통찰력으로재수아재의 현실의 삶에 감춰진 실재와 허상의 차이를 횡단하고 있다.

 

문이 잠겼을 뿐 아니라 대못이 박혀있다. 이건 이미 스스로 자취를 감춘 것이다. 당연하다. 왔던 곳도 없으니 가는 곳 또한 없을 것이다. 화자는 이러한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의 뇌 한 편에 자리했던 것이다. 이게 바로 시적 발상이 되고 시상을 전개하며 묘사할 수 있는 것이다. 추상적, 관념적이지 않고 체험에서 오는 시가 독자에게는 깊이 와 닿는다.

 

화자는 시적인물인재수아재아재라는 보편적 호칭, 그리고 벅구와 고깔모자로 대변되는 동네 두레 굿판 속 맺고, 풀고, 메기고, 받는 가락과 리듬의 천변만화하는 大同의 현장을 눈앞에서 보고 있다. 그 속에서 우리 문화의 결정체이고 자화상인 굿판의 흥과 신명의 유전자를 재수아재을 통해 시상을 펼치면서 쑥부쟁이의 꽃말처럼 평범한 진리한 송이를 마을 어귀에서 줍고 있다.

 

길들여지고 정형화된 듯한 작금의 풍물이 아닌 딜레탕트적인재수아재와 같은 예인들이 가고 없는 화자의 가슴 한 복판을 어느 누가 뚜벅뚜벅 직립보행을 할 것이며 드라이포인트(drypoint) 할 것인가.

 

시인 홍영수jisr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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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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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춘식

시인의 마음속 추억을 니는 글에서 가져올 뿐입니다
어릴적 기억을 소환하는 감동 깊은글 감사합니다
사랑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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