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12-04(금)

야회(夜會)- 4회

김찬숙 단편소설

댓글 0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밴드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기사입력 : 2020.07.12 17:48
  • 프린터
  • 이메일
  • 스크랩
  • 글자크게
  • 글자작게
김찬숙.png
김찬숙 소설가

어쨌든 황노인은 우심이 가출했던 그해 겨울, 인근마을 사람들로부터 우심이 죽었으니 시신을 거두어 가라는 전갈을 받았었다. 안골에서 불과 30리 안팎의 그리 머잖은 마을의 한 외딴 오두막에서 우심은 여섯 달 동안이나 해산을 기다렸고, 난산 끝에 숨을 거두었다는 것이다. 그 여섯 달 동안 우심의 뒷바라지를 맡아 온 노파가 우심이 난산 끝에 죽자 시신을 앞마당 눈 속에 가매장한 뒤 수소문하여 황노인에게 전갈을 보낸 것이었다. 황노인은 이미 형체를 알 수 없는 시신을 큰 바위 구릉에 묻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 일조차도 마을 사람들은 황씨를 안심시키기 위한 우심의 고도의 계략이라고 주장했지만, 그는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우심에게 피치 못할 사정이 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거구만! 그게 무엇이든 그는 두 번째 굿판에서의 우심의 불타던 눈빛과 애원하며 흘리던 눈물만큼은 진정한 것이었다고 끊임없이 되새김하며 살아왔다. 우심! 이름만 불러도 가슴이 뛰고 목이 마르고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가 깊은 갈증과 알 수 없는 허기를 느끼게 했던 그 이름. 그녀를 다시 볼 수만 있다면……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듯했다. 

     

신문2020년 7월사본 -DSC_5505.jpg

 

  끝없이 펼쳐져 있는 들판 한 끝으로부터 집채만 한 커다란 저녁놀이 부서지고 있었다. 들판의 다른 한쪽 끝으로부터는 또한 누군가가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 온 천지에는 굿거리 소리만이 자욱하게 퍼져나가고, 아마도 그 굿거리 소리는 지금 제자리걸음을 하듯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저 춤추는 형체가 거기 있는 한 언제까지나 계속될 듯싶었다. 저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며 오고 있는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그나저나 저 춤꾼이 어서 들판 밖으로 사라져버리든지, 아니면 이쪽으로 어서 다가와서 집채만 한 저 햇덩어리를 좀 막아주었으면 좋으련만. 황노인은 저녁 햇빛에 눈이 부시어 눈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굿거리 소리가 점점, 점점 높아지는가 싶더니, 갑자기 뚝 그치면서 별안간 귀가 멍멍한 고요 속에 그 춤꾼의 검은 형체가 해를 등지고 물끄러미 황노인을 굽어보고 서있는 것이었다. 그 춤꾼은 어서 일어나세요, 어서 일어나라구요, 하고 마치 타이르는 듯한 말을 남기고는 햇덩어리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 버렸다. 그렇다 우심이로구나! 그 춤꾼의 형체가 어쩌면 죽은 아내 우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황노인은 온 힘을 다해 일어나려고 했지만 꼼짝 할 수가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황노인에게는 하루 중 하산하는 길이 가장 쓸쓸했다. 자기도 언젠가는 백사를 잡으리라, 그것은 땅꾼으로서는 명예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이긴 했으나 그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 일이기도 하니까. 황노인이 하산 길에 느껴야 하는 쓸쓸함은 아마 백사를 찾아내지 못한 서운함에서 연유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언제나처럼 황노인은 큰 바위 구릉이 내려다보이는 등성이에 뱀 자루를 내려놓은 채 쉬고 있으면, 조금 전의 그 이상한 춤꾼을 통째로 삼킨 바로 그 햇덩어리가 소래산봉에 아슬아슬 걸려 있는가 싶더니 이내 천천히 굴러 떨어지며 온 천지는 바야흐로 황홀한 황혼녘이 되어 있었다. 그 무렵 황노인은 마흔을 한참 지났건만 장가들 꿈조차 꾸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늘 한탄해 오던 터였고, 특히 하산 길에는 그 같은 감정에 쌓여 매우 울적해 하곤 했었다. 백사를 잡으려면 먼저 사람-여자를 만나야 한다고, 그래야 백사 잡을 힘이 생긴다고 산에서 만났던 노인은 말하지 않던가 말이다. 갑자기 소래봉 뒤에서 뿜는 황홀한 황혼의 빛줄기 한 가닥이 저 아래 큰 바위 구릉에 내리꽂히는가 싶더니, 거기 언제부터 있었던지 열여섯 앳된 우심이 어깨를 들먹거리며 울고 있고 서른 살의 황노인이 그때처럼 다리를 후들거리며 다가가 어깨를 잡자 우심이 재가 되어 폭삭 꺼져 버리는 게 아닌가.

-다음 회에 계속


김찬숙 

소설가. 부천신인문학상 소설부문 당선.

 현재 다니엘종합병원 의무원장.

chankkk@hanmail.net

 


 

태그

전체댓글 0

  • 06610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야회(夜會)- 4회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