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11-27(토)

웹소설 - 매듭 /3회

이준옥

댓글 0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밴드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기사입력 : 2021.10.17 22:21
  • 프린터
  • 이메일
  • 스크랩
  • 글자크게
  • 글자작게

"객사는 집으로 들이는 게 아니다."

모두들 말렸습니다. 하지만 나는 당신의 아내. 누구도 나를 어길 순 없었습니다. 난 영안실의 그 후덥지근하고 향내가 너무 강하고 탄식과 회한과 눈물이 범벅인 낯선 곳에 당신을 뉘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당신의 이 집에서 편히 있다가 보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그때 그 노파에게서 팔만 원에 바가지 써서 산 병풍 뒤에 누워 있습니다.

당신도 역시 내 인생에 바가지를 씌웠지만 나는 정말 지금까지 그것이 억울하거나 슬프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내가 쓴 바가지에 비하면 그것은 아주 귀여운 것이기까지 합니다. 당신을 변명하기 위한 귀여운 선택이었다고 나는 진작에 너그럽게 이해했으니까요.

당신과 내가 결혼하게 된 것은 당신이 내가 나가는 장애인 복지관에 봉사 활동을 오면서부터 입니다. 나는 중증 장애 1급으로 허리 밑으로는 아무런 느낌이 없습니다. 때로는 이런 내 몸이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몸의 밑으로는 아무런 감각이 없는데 살아가는 게 말입니다. 나무를 보면 뿌리 부분인 밑동이 죽으면 위도 죽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람은 사니 신기하지요. 사람의 뿌리는 밑이 아니고 가슴 한 가운데, 그리고 정수리 속의 한 가운데에 있기 때문인가 봅니다. 바지 속에 감추어진 나의 다리는 오그라져서 펴지지도 않지만 이라크에서 발견 된 미라의 다리 같습니다. 사실 미라나 마찬가지지요.

그 때 우리 복지관에서는 매듭 전시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나를 비롯한 다른 장애우 들도 손이 민감하고 섬세해서 우리가 만드는 매듭은 실상 잘 팔려 나갔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중요한 수입원이 되어 주기도 했지요. 특히나 내가 만든 매듭은 인기가 있었습니다. 난 주로 노리개를 만들었는데 가끔 티브에서 노리개를 한복 앞섶 옷고름에 단 여인들을 보면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조선 여인들이 멋을 알았습니다. 그곳에 노리개를 하여 남자들의 시선을 살짝 끌면서 여인의 품위도 지킬 수 있었으니까요. 사실 노리개는 부귀다남. 불로장생. 백사여의(百事如意)등의 그 시대 여인들의 염원이 담겨 있는 호화로운 장식물입니다.

"사람은 항상 밑을 보고 살아야 한다. 위를 보고 살면 목이 아프기도 하지만 불행해 진다. 위를 보고 살다 보면 매일 한탄 할 일만 생기지."

아버지는 나더러 밑을 보고 살아야 한다고 늘 말했습니다. 어른의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말은 맞는 말이었습니다. 밑을 보고 사니 바가지 쓴 내 인생이 뭐 그렇게 가슴을 칠 일은 아니더라구요. 두 손이 없어서 발가락 사이에 칫솔을 끼워 이도 닦고 발가락 사이에 마스카라를 끼워 눈썹을 올리고 발가락 사이에 루즈를 끼워 입술을 그리고 발가락 사이에 붓을 끼워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면서 나는 위안을 삼았으니까요. 아마 내가 위를 쳐다 본 것은 당신이 유일한 대상이었을 겁니다.

그날은 내가 당번이었습니다. 전시장을 지키는 일을 돌아가면서 했거든요. 당신은 복지관 수영장에서 봉사 활동을 끝내고 돌아가며 우리 전시실에 들렀고 전시되어 있는 노리개 중 내가 만든 소삼작 노리개를 유심히 보았습니다.

"아름답네요."

당신은 고개를 소삼작 노리개에서 떼지 않은 채 말했지요. 난 괜히 볼이 빨개져서 당황스러워졌습니다.

"이건 팔기도 하나요."

"네."

"아. 여기 가격표가 있네요. 십오 만원이면 비싼 편이네요."

"그게 은과 호박에다 매듭을 한 거라....."

당신은 지갑을 꺼내더군요. 사실 소삼작 노리개를 출품하면서 팔릴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이거 내가 사겠습니다."

당신은 반 듯 하게 생긴 얼굴이었어요. 그러니까 미남이라는 얘기입니다. 나이는 서른 다섯쯤 되었겠구나 했는데 나중에 보니 딱 맞았더라구요. 나보다 열 살이 위였지요.

"지금은 가져갈 수 없고 전시가 끝나면 가져가실 수 있습니다. 예약을 하시면 예약증을 써 드릴 테니 이따 여섯 시 이후에 오시면 될 거예요."

"그런데 이걸 만드신 분은 누구예요? 김찬휘 작이라..... 그 분도 그 시간에 오면 뵐 수 있을까요?"

난 수줍어서 나라고 대답 할 수가 없었어요. 그냥 부끄럽더라구요. 그래서 그 시간에 오면 볼 수 있다고 했지요.

당신은 약속대로 여섯 시에 왔고 소삼작을 가져가며 다른 사람을 통해 그 노리개를 만든 사람이 나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왜 아까 말하지 않았어요. 본인이 만든 것이라고."

난 그냥 고개를 숙이고 배시시 웃기만 했습니다.

"솜씨가 좋으네요. 그럼 저쪽 작업장에서 주로 만드나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소삼작 노리개에 대해 나는 당신에게 설명해 주었지요. 대삼작. 중삼작. 소삼작 노리개 중 소삼작은 소녀들이 하는 것으로 분홍. 연두. 노랑으로 그 술을 달지요. 소녀 시절이란 인생의 봄 아닌가요. 분홍. 연두. 노랑은 모두 봄의 빛깔입니다. 노리개는 띠돈. 끈목. 패물. 매듭. 술 다섯 가지로 이루어지지요. 띠돈은 가장 위에 있는 고리로 노리개를 고름에 걸게 만든 것인데 주로 금. . 백옥. 비취옥. 금패. 산호등이 쓰이지요. 내가 출품한 소삼작엔 나비형의 은을 사용했습니다. 끈목은 동다회를 주로 쓰는데 띠돈과 패물. 술을 연결하며 매듭을 맺는 것입니다. 난 국화매듭으로 맺고 패물은 나비 모양의 호박을 사용했습니다. 난 소삼작을 만들며 꿈에 내가 한복으로 한껏 성장한 후 이걸 옷고름에 달고 날았다는 이야길 당신에게 했지요. 처음 본 사람인데 이상하게 그런 이야길 하는 게 어렵지 않더군요. 날았다는 내 이야길 들은 당신은 소삼작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지요. 그리고 당신은 내 흰색 티셔츠 위에 그 소삼작을 달아 주었지요.

"봄이네요."

당신은 복지관 뜰에 핀 몽올몽올한 복숭아꽃을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떴어요. 어느덧 저녁이었어요. 내 가슴 봉긋한 곳에 매달린 소삼작은 내가 살짝만 움직여도 파르라니 떨며 분홍. 연두. 노랑의 물결을 일으켰습니다.

  - 일주일 후에 계속 - 

 

이준옥 :소설가. 1회 전태일 문학상 소설 당선한국작가회의회원복사골문학회 주부토 소설동인.

아름다운 지구에 여행 온 것을 축복으로 여기며지구의 모든 것을 사랑하며살아가고 있음.

태그

전체댓글 0

  • 38692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웹소설 - 매듭 /3회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