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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4회

박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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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2.01.01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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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흐뭇했다. 밧세바는 뜻밖의 월척이었고 토실토실한 토끼였으며 매끈한 암사슴이었다. 자신은 행운의 어부고 사냥꾼이며 수많은 암사슴을 거느린 멋진 뿔을 가진 수사슴이었다. 지금까지 첫째 부인 미갈을 비롯하여 여러 부인들을 거느리고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아리따운 여자를 품에 안을 수 있었지만 밧세바 만한 여자는 없다고 생각되었다. 미모도 특출하지만 지혜 또한 다른 부인들과 비길 바가 아닌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피는 속일 수 없다고 그녀는 자신이 여태까지 참여했던 수많은 전투에서 커다란 도움을 받았던 책사 아히도벨의 손녀라는 게 아닌가. 아무리 첫 만남일지라도 밧세바는 가려운 곳을 정확하게 짚어내어 긁어주고 원하는 바를 넘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기쁨까지 줄 줄을 아는 여자였다. 무엇보다도 합궁의 순간에 느낄 수 있는 희열은 제대로 된 짝을 만났다는 탄성을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행여 그녀가 만족스럽지 않았을까 염려가 될 정도였으니. 그만한 여자는 과거에도 있지 않았고 앞으로도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하나하나 부인들의 얼굴을 떠올려 봐도 장점과 단점이 그대로 드러났다. 혹 근처라도 올 수 있는 부인을 꼽으라면 지혜로운 아비가일이 아닐까.

아비가일은 원래 갈멜 족속의 갑부, 나발의 아내였다. 나발은 부자였으나 성격이 난폭하고 탐욕스러우며 고집이 센 구두쇠였다. 다윗이 사울 왕의 끊임없는 박해를 피해 소수의 무리를 이끌고 광야를 방랑할 때 우연찮게 나발의 양 삼천 마리와 염소 천 마리를 보호해주는 일을 했는데 어느 축제일이 되어 춥고 배고픈 다윗이 나발에게 부하들을 보내 원조를 요청했다. 사실 축제 때는 어려운 이웃이나 나그네에게 후하게 대접하는 게 관례였다. 그런데 나발은 다윗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 그를 도왔음에도 불구하고 모욕적인 언사와 함께 일언지하에 요청을 거절해버리는 게 아니가. 다윗은 발끈했다.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발을 혼내줄 결심을 하게 되는데 그때 총명하면서도 용모까지 빼어난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이 그런 사실을 알고 간청을 하여, 또 다윗이 보기에 흡족할 정도로 나발과는 아주 다른 처신을 해 칼에 피를 묻히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일이 있고난 얼마 후 나발은 급사하고 말았다. 어찌된 영문인지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사람이 갑자기 죽을 수도 있는 일은 가끔 일어나니까. 그러나 다윗과 심복 몇은 이유를 알고 있었다. 외경은 아비가일이 탐이 난 다윗이 쥐도 새도 모르게 한 짓이었다고 전한다. 또 다른 외경은 다윗에게 반한 아비가일의 협조를 언급한다.

나발이 죽었다는 소문이 들려오자마자 다윗은 기다렸다는 듯 아비가일에게 사람을 보내 의향을 물은 후 부인으로 맞아들였다. 아비가일의 반대가 있을 리 만무. 아니 그렇게 묻고 대답하는 일조차 남의 눈을 의식한 요식행위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아비가일은 둘째 아들 길르압을 낳았다.

밧세바의 손길은 다윗의 몸 구석구석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녀는 빼어난 안마사가 되어 뭉친 곳을 풀어주고 딱딱한 곳은 두들기며 부드러운 곳은 더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미약 탓이었을까. 아니면 아직도 왕성한 다윗의 정력 탓이었을까. 다윗의 성가름은 쓰러질 줄 모르고 밧세바의 손길이, 입김이, 젖무덤이 그곳을 스칠 때마다 벌떡벌떡 씩씩거렸다.

밧세바는 신이 났다. 그물에 가득한 고기들이 펄떡대며 딸려왔다. 한 마리도 빠짐없이. 이제 바구니에 담을 일만 남았다. 다윗은 어느새 두 손으로 자신의 뺨을 어루만지며 연거푸 숨 가쁘게 탄성을 질러대고. 그녀는 고기를 바구니에 담기 시작했다.

폐하, 아직도 밤은 멀었습니다.”

아주 새지 말았으면 좋겠구려. 하하하.”

다윗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자신은 밧세바의 포로라 생각되었다. 절망과 패배의 포로가 아닌 기쁨과 즐거움의 포로, 행복한 포로였다.

욕탕에서도 침실에서도 둘은 밤이 가는 줄 모르고, 지칠 줄도 모르고, 서로를 끊임없이 탐했다. 샘물은 계속 솟아올랐고 마시면 마실수록 달콤하기만 했다.

달은 벌써 지고 없었다. 더 이상 절정을 미루지 못할 상태였다. 이윽고 다윗도 밧세바도 최고의 절정에 이르렀다. 생전 보지도 듣지도 못한 괴성과 자지러짐 끝에 서로가 부르르 떨며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둘은 죽은 듯이 새근새근 잠에 빠져들었다. 펄떡이던 고기들을 고스란히 바구니에 담았다고 밧세바는 생각하면서. 이제 요리할 일만 남았을 뿐이라고. 그렇게 밤이 가고 날이 갔다.

 

그때 암몬 족속의 수도 랍바성을 에워싸고 있던 요압 장군이 이끌고 있는 다윗의 군대는 죽을 각오로 최후 저항을 하는 암몬 군대를 쉽게 멸하지 못하고 싸움은 일시 소강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윗은 전쟁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차피 이기리라 믿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밧세바에 푹 빠져 헤어날 줄을 몰랐다. 오로지 그녀와의 밀회에만 열중했다.

밧세바는 하루하루가 새로웠다. 그녀의 타고난 매력의 원천은 마를 줄을 몰랐다. 자연히 다윗의 오수를 즐기는 습관은 시도 때도 없어졌다. 늦잠을 늘어지게 자기도 했지만 오후에도 시간만 나면 잠을 청했다. 그것은 밧세바와 즐기는 밤을 위한 힘의 비축이었다. 다윗은 밧세바에게 완전히 미쳐 있었던 것이다.

봄이 무르익어 여름이 시작되려는 어느 날이었다. 밧세바와의 연락을 도맡아 하는 시종이 다윗이 낮잠을 깨길 기다려 뜻밖의 소식을 전했다.

폐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 무슨 일인가. 밧세바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겐가?”

시종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얼굴을 본 적이 없었기에 다윗은 긴장하며 틀림없이 밧세바의 일일 거라 지레짐작을 하고 물었다.

그렇습니다, 폐하.”

답답하구나. 어서 말을 해라.”

오늘부터는 오지 못할 거라 하옵니다.”

뭣이라고? 오지 못한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단 말이냐. 어디 아프기라도 하느냐?”

다윗은 누워 있던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런 게 아니오라 잉태한 걸로 아옵니다.”

뭣이, 잉태! 잉태라니?”

다윗은 까무러치도록 놀랐다.

정녕 그게 사실이란 말이냐?”

어찌 감히 거짓을 아뢰오리까.”

시종은 자신이 무슨 큰 죄라도 저지른 모양으로 고개를 들지 못했다. 다윗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일을 어찌할꼬.’

둔기로 머리를 맞은 듯 충격이 온몸에 퍼져왔다. 밧세바를 만난 지 두세 달.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는 전쟁터에 있는데 그녀가 임신을 했다면 하루도 빠짐없이 놀아난 자신의 아이가 틀림없다는 말인데.

이 일을 어쩐다냐.’

다윗은 고심했다. 밧세바와 놀아난 사실이 밝혀진다면, 더군다나 충신의 아내와 간음한 사실이 탄로 난다면, 언제 어디서의 전투건 앞장서야 할 왕의 위치에서 전쟁터에 나가지도 않고 후방의 궁궐에만 안주하다가 죽음을 무릅쓰고 선두에 서서 싸우는 장수의 아내와 간음이나 저지른 추잡한 왕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다면, 지금까지 수많은 죽을 고비를 넘기고 마침내 이룩한 통일 왕국 이스라엘의 왕의 자리마저 장담할 수 없는 처지라 생각되었다. 그 누가 자신과 같은 부도덕한 왕을 섬기며 따를 것인가. 어떻게 간음한 자신이 백성에게는 간음한 자를 처단하라고 심판할 수 있단 말인가. 언제 어디서고 모범이 되어야 하는 여호와 율법의 수호자가 율법을 스스로 내팽개치고선 백성에게 율법 준수를 외칠 수 있단 말인가.

비난은 불을 보듯 뻔하고 신하와 백성들은 등을 돌릴 게 너무도 분명해 보였다. 자신을 시기하고 미워하는 무리들은 이때가 기회다 싶어 율법에 대하여 패륜의 죄를 저지른 왕을 폐하자는 명분으로 반역을 꾀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그 무리 중의 선두주자가 사울가()임은 불을 보듯 빤한 일. 다윗은 다급해졌다. 그는 호위대장을 불렀다. 그리고 요압 장군에게 사자를 보내 우리아의 소환을 명령했다.

그 아이는 내 아이가 아니다. 우리아의 아이여야만 한다.’

결코 그대로 방치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밧세바에겐 못할 짓이라 생각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께끄름한 일은 단숨에 처리해야 한다고 다윗은 자신을 재촉했다.

백성들의 수군대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만 같았다. 잠도 오지 않았다. 밧세바와의 황홀한 밀회가 이렇게 빨리 끝나다니 아쉽기만 했다. 그러나 이제는 끝내야 했다. 간음을 저지른 죄악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변명할 여지가 없으며 아무리 막강한 권력을 가진 왕이지만 백성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기에 완벽하게 비밀을 지키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되었다.

충직한 우리아는 다윗의 부름에 단숨에 달려와 무릎을 꿇었다.

폐하, 폐하의 종 우리아가 문후 여쭈옵니다.”

다윗은 우리아를 보는 순간 참으로 괴로웠다. 담담하게 그를 맞으려 했건만 막상 듬직한 우리아의 얼굴을 대하니 죄책감이 목까지 차올랐다.

어서 오시오. 그래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았소.”

고생이라니 당치 않으십니다.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과 폐하의 은혜가 넘칠 뿐입니다.”

상황은 어떠하오?”

적의 랍바성이 견고한데다 놈들이 죽고살기로 버티고 있어 쉽지는 않으나 기필코 폐하의 품에 안기게 될 것입니다.”

그래야지요. 난 우리 군대를 믿소. 내가 그대를 특별히 부른 것은 그동안의 공이 너무 많아 휴가를 내리고 싶었기 때문이오. 전선에 너무 오래 있었으니 모쪼록 아무 생각 말고 며칠 푹 쉬도록 하시오. 부인도 많이 기다렸을 것이오. 노심초사 그대 걱정에 궁중의 문턱이 닳을 지경이란 얘길 들었소. 이제부터는 이렇게 전쟁이 장기전으로 갈 경우 장군들과 군사들이 돌아가면서 휴가를 즐길 수 있도록 영을 내릴 것이오. 그럴 여유쯤 있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오. 그럴 여유도 없다면 내가 어찌 궁중에 머무를 수 있겠소.”

참으로 현명한 말씀이시며 은혜가 하늘에 이를 것입니다. 이 몸 부족하지만 폐하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바쳐서라도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이랬다. 우리아는 다윗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낌없이 바칠 충신이었다. 이런 우리아를 불러놓고 소환의 변명을 늘어놓은 다윗은 양심의 가책에 그가 한시라도 빨리 시야에서 사라지길 원했다.

그러면 곧장 집으로 가서 쉬도록 하시오. 전쟁은 잠시 잊고서 말이오.”

우리아는 물러갔다. 다윗은 시종들을 시켜 진기한 음식과 향품 등 하사품을 실려 보내곤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아이는, 밧세바의 뱃속에 있는 아이는 내 아이가 아니라 우리아의 아이다.’

참으로 비열한 다윗의 꼼수였다. 그러나 비열하다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한 다윗이었다.

  - 계속 (매주 토요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박희주 작가 운암.jpg
박희주 작가

 1996년 등단한 후 첫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와 두 번째 시집 네페르타리를 발간하고 2005년 <월간문학>에 중편소설 내 마음속의 느티나무로 신인작품상을 수상하며 소설계 데뷔소설집으로 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 시대의 봉이』 『싹수가 노랗다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와 장편소설집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 『나무가 바람에 미쳐버리듯이가 있다. 2021년 제46회 한국소설문학상우수출판콘텐츠로 박희주 중편3이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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