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5-16(월)

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5회

박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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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2.01.09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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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반면에 우리아는 왕의 처사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지금은 전쟁이다. 그것도 랍바성을 포위하고 있는 급박한 상황. 집에 특별한 일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쩌자고 왕은 나를 부른 것일까. 휴가라니? 전쟁 상황에서 휴가라니?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은 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여태까지 자신이 지켜본 다윗 같지 않은 소환의 변이고 휴가의 명분이었다. 혹 내가 이방인이라서 시험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시험을 당할 만한 짓은 하지 않았다고 우리아는 자부했다. 자신은 왕과 이스라엘의 영광을 위해 사심 없이 싸워온 자타가 공인하는 용사가 아닌가. 정말로 심신의 피로를 풀라는 왕의 배려인가?

우리아는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며 마침내 왕의 은혜에 감격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동료들과 부하들을 생각했다. 어찌 나 혼자 발 뻗고 편히 잠잘 수 있단 말인가. 어찌 나 혼자 부인의 품속에서 노닥거릴 수 있으랴. 그건 여호와께서도 용납하지 않으리라.

그렇게 생각한 우리아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광야에서 노숙하며 잠을 설치는 동료와 부하를 생각하니 도저히 집으로 갈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왕궁 호위대의 숙소에서 잠을 잤다. 그게 오히려 편했다. 사실 아리따운 아내 밧세바를 그리는 마음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벌써 몇 달째인가. 그러나 그것은 사사로운 개인적인 정리였다. 그는 진정한 조국 이스라엘이 보다 더 소중했다.

다윗은 가슴을 짓누르던 일을 처리한 것이 못내 흐뭇하여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오랜만에 넷째 부인 마아가의 처소에 들렀다. 우리아가 밧세바와 하룻밤만 보낸다면 그녀가 잉태한 다윗의 아이는 우리아의 아이로 감쪽같이 둔갑해버리는 것이다. 마음에 찔리는 바가 결코 없지 않았지만 우선 위기를 그렇게 넘기기로 작정하고 우리아를 소환했던 것이다. 다음에 다른 문제가 생긴다면 그건 그때 생각할 일이었다.

마아가의 처소에는 그녀에게서 난 아들 압살롬과 딸 다말이 함께 있었다. 압살롬은 아들들 가운데 가장 다윗을 빼닮아 아주 기품 있는 청년으로 장성했으며 다말 또한 정숙하고도 아리따운 처녀가 되어 있었다.

마아가는 다윗을 극진하게 받들었다.

어디 편찮은 데라도 있으십니까. 그전보다 안색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편찮다니 당치 않소. 신경 쓰는 일이 많아 그럴 거요. 아무 걱정 마오.”

다윗은 밧세바와 밀회의 밤이 격렬하여 얼굴이 조금 상한 것이려니 당연하다 생각되었다. 그러나 마아가는 왕의 건강이 염려되어 상비해 놓은 피로회복에 좋다는 약을 다윗이 들도록 했다. 압살롬은 곧 다윗에게 인사하고 자신의 관할로 돌아갔다. 다윗은 압살롬의 나무랄 데 없는 용모에 비록 아들일지라도 같은 남자로서 질투마저 느낄 정도였지만 보면 볼수록 자랑스럽고 든든한 마음이 더 컸다. 마아가와 다말 두 모녀는 다윗을 침상에 눕게 해 한쪽씩을 맡아 팔다리를 주무르며 피로를 가시게 했다. 다말은 다윗에게 어리광을 곧잘 부렸고 다윗은 그런 딸이 너무 귀여워 신랑감을 생각하다가 달콤한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마아가는 결코 투기라곤 모르는, 다윗에게는 편안하기 이를 데 없는 부인이었다.

다음날 다윗은 전혀 생각할 수도 없는 보고를 받았다. 우리아가 집에 들어가지 않고 호위대와 함께 왕궁 막사에서 잠을 잤다는 것이 아닌가. 기가 막혔다. 그는 자신의 계획이 틀어져버린 것에 대해 은근히 화가 치밀었다. 그렇다고 내색할 수도 없었다. 단 하룻밤으로도 족한 음모였다. 그는 우리아를 당장에 불러들여 나긋한 미소까지 띠며 물었다.

그대는 어찌하여 많은 날들을 전장에서 보내놓고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호위대 숙소에서 잠을 잤더란 말이오?”

송구스럽습니다. 폐하의 명을 어긴 죄 백 번 죽어 마땅한 일이오나, 아직도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괘가 장막에 있사옵고, 수많은 이스라엘 군사가 암몬 군대를 멸하기 위해 광야에서 노숙하고 있으며, 저의 상관이신 요압 장군과 장수들이 바람이 휘몰아치는 막사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전심전력 하는 판에, 어찌 저 혼자 잘 먹고 잘 마시며 부인의 품안에서 발을 쭉 뻗고 잠들 수 있겠습니까. 저는 폐하의 대적들이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또한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 온 세상에 나타날 때까지 그리할 수 없나이다.”

다윗은 입맛을 다셨다. 밧세바와의 간음만 아니라면 이만한 충신이 또 있을까 탄복하고 후한 상을 내려야겠지만 자신의 코가 석 자였다. 충직하고 우직한 우리아가 오히려 짜증이 날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내색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과연 충신이로고. 그대 같은 장수가 있는 한 우리 이스라엘이 가는 길엔 승리만 있을 뿐이오.”

부끄럽습니다. 하루 빨리 전장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지만 그건 아니 될 말이오. 그대는 한 가지만 알고 두 가지는 모르는구려. 나는 이제부터 장수와 그 부하들을 돌아가면서 쉬게 한다는 영을 내리겠다고 하지 않았소. 누구에게나 휴식은 필요한 법이오. 적당히 쉬게 하는 게 더 능률적이란 말이오. 바로 그대가 첫 번째 경우인데 그대가 집에 가서 쉬지 않는다면 다음 차례의 장수들이 어떻게 편히 쉴 수 있겠느냐 말이오. 막상 쉬고 싶어도 그대의 선례가 있어 그들도 그대처럼 할 게 아니겠소?”

지금 전장의 상황은 그렇지가 않사옵니다.”

내 말을 마저 들으시오. 또한 부인도 생각해야 할 게 아니오. 만약 그대가 고집을 부린다면 다른 장수의 부인들은 그대를 얼마나 원망하겠소.”

하지만 폐하, 조금만 있으면 랍바성은 분명히 함락될 것입니다. 휴식은 그 후에 취해도 늦지 않습니다. 폐하께서 말씀하지 않으셔도 저희들은 태평성대를 자연스럽게 누리게 될 것입니다.”

어허 우리아. 우리의 대적은 암몬만이 아니오. 그대의 충정은 내가 다 알고 있으니 다른 말 말고 오늘은 집에 들어가 푹 쉬었다가 그토록 마음이 놓이지 않거들랑 내일 당장 전장으로 떠나도록 하시오. 선례를 남기지 말란 말이오.”

폐하, 은혜가 망극하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폐하와 언제까지나 함께 하시길 앙망하나이다.”

그러나 우리아는 다윗의 희망과 달리 그날도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다윗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미련한 곰탱이 같은 놈이로구나. 그렇게 내 맘을 몰라준단 말인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그냥 할 것이지그러면 저 좋고 나 좋은 일 아닌가.’

다시 우리아를 불렀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왜 집에 들어가지 않았느냐고 힐책하지 않았다. 아직도 갑옷을 입고 있는 우리아의 결연한 얼굴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말을 할 때면 오직 다윗을 위하고 이스라엘을 위하고 여호와의 영광을 위하여 매진할 뿐이라는 거였다. 다윗은 그런 우리아에게 질려버려 오죽하면 꼴도 보기 싫을 정도였다. 그러나 내색할 수는 정말 없었다. 전쟁터로 다시 출발하는 그를 위하여 왕으로서 건투를 빌어주고 위로해야 마땅했다.

그대의 고집은 대단하구려.”

용서하십시오. 집에서 자는 잠자리가 저에게 편할 수가 없습니다.”

알았소, 알았어. 나는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그대가 참으로 듬직할 뿐이오. 그러니 오늘 떠나기 전에 그대의 충정을 높이 사 상을 베풀기를 바라는데 그것마저 거절할 터요?”

황공하옵니다. 어찌 폐하의 영을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다윗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종들에게 명하여 주연을 준비시켜 우리아를 옆에 앉혔다.

, 언약의 피요. 이스라엘의 피란 말이오.”

다윗은 큼지막한 잔에 포도주를 철철 넘치게 따랐다. 그들 앞에는 산해진미가 넘쳐났다.

폐하, 영광이옵니다.”

우리아는 감격했다. 일개 장수에 불과한 자신에게 왕이 베푸는 친절이 분에 넘쳐 눈물이 날 정도였다. 이런 왕을 위하여 지금까지 해왔던 자신의 충성이 너무 미미하지 않았나 생각하고는 앞으로는 더욱 분골쇄신하리라 다짐했다. 따라서 그는 다윗이 따라주는 대로 거침없이 마셨다. 감격, 또 감격이 넘치는 잔을 어찌 마시지 않을 수 있으랴. 포도주도 자신의 신분으로서는 감히 맛보기 힘든 최상급이었다.

다윗도 똑같이 마셨다. 어디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는 심보도 작용했다. 그렇다고 왕의 체통을 잃지는 않았다. 우리아에게 하는 얘기는 전쟁의 상황에 따른 지시였고 부하들의 사기를 북돋아주는 일이었으며 자신이 겪어본 암몬 족속의 장점과 단점, 곧 특성을 일깨워주는 것이었다. 그런 모습은 장수를 대하는 왕으로서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우리아도 자세를 흐트러뜨리지는 않았다. 다윗의 얘기를 귀담아 들었고 벌써 어떤 상황에서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며 기필코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이스라엘의 주인을 기쁘게 해드릴까만 생각했다.

두 사람은 주거니 받거니 해가 지도록 술을 마셨다. 우리아는 어느 시간까지는 전쟁터로 떠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이제나저제나 술자리가 끝나기를 기다렸으나 다윗은 좀체 그런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자신이 먼저 일어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술기가 얼큰하게 오르고 더 이상 마셔선 안 된다고 생각했을 때는 해가 저문 뒤였다. 그는 오늘은 전쟁터로 떠날 수 없겠다고 체념했다.

다윗은 취했다. 그러나 그러한 술자리는 우리아의 의지를 술로써 무력화시키는 교활한 작전이고 계획이었다. 우리아는 선례를 남기지 마라는 주의를 주었음에도 듣지 않았다. 그렇다고 처벌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오늘은 술을 엄청나게 많이 마시게 하여 전쟁터로 떠나는 걸 막고 인사불성인 상태의 그를 집으로 데려가게 해서 기어코 밧세바와 하룻밤을 보내게 할 작정이었던 것이다. 그가 밧세바를 품에 안고 자든지 말든지 그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집에 들렀다는 것, 오로지 그게 중요했다.

다윗은 우리아가 무척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걸 보고 만족했다. 조심스럽게 행동한다는 것은 분명 자신 앞에서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까하는 우리아의 술 취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다윗은 자신의 잔을 비우며 우리아가 마시지 않을 수 없도록 강권했다.

우리아.”

, 폐하.”

다윗이나 우리아나 혀가 꼬였다. 다윗은 의도한 바였지만 우리아는 의지대로만 되지 않는 혀가 원망스러웠다.

오늘은 그대 덕분에 내가 너무 즐거워 포도주가 넘치게 된 것 같소. 그대도 과했을 것이니 집에 들어가 쉬었다가 내일 떠나도록 하시오. 부디 건투를 비오. 요압 장군에게도 승리를 기원한다는 내 뜻을 전하기 바라오.”

제발 집에 들러라. 다윗은 상체를 앞뒤로 흔들거리며 간신히 말했다. 듣는 우리아도 마찬가지였다.

신이 무례를 범한 것 같사옵니다. 암몬 족속보다 술이 더 강한 듯합니다. 용서하시옵소서.”

아니오, 아니오. 오늘 정말 유쾌했소. 술이야 취하려고 마시는 것 아니겠소? 여봐라, 어서 우리아를 댁으로 모셔라.”

다윗은 시종들에게 명했다. 댁을 발음할 때 유달리 악센트가 강했다.

폐하, 부디 강건하시옵소서. 하루 속히 좋은 소식을 올려 보내겠습니다.”

우리아는 일어섰다. 그러나 그는 비틀거렸다. 시종들이 그를 부축했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우리아의 모습을 지켜본 다윗은 고개를 뒤로 젖히며 웃어댔다. 그의 말대로 유쾌한 웃음이었다.

으하하하, 천하의 우리아도 술에는 못 당하는구나. 우리 이스라엘의 보배를 잘 모시어라. , 집까지 말이다. 으하하하.”

집도 댁과 마찬가지로 악센트가 강하게 나왔다. 이제야 정말로 두 다리 쭉 뻗고 잘 것 같았다. 참으로 충신이로고. 밧세바와 밀회가 께름칙하긴 했지만 어디 우리아 만한 장수, 믿을 수 있는 심복이 또 있으랴 싶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아침 빠개질 듯한 두통에 시달리다 잠을 깬 다윗은 믿어 의심치 않았던 자신의 계획이 모두 허사였음을 알게 되었다. 시종은 다윗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죄인처럼 조아렸다.

한사코 집으로 가자해도 막무가내였습니다. 칼까지 빼들고 버티는 데는 저희들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다윗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래서 지난밤도 궁중 막사에서 잤단 말이지?”

그렇사옵니다.”

다윗은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느라 무진 애를 써야만 했다. 손이 부르르 떨릴 정도였다.

알았다. 오늘 떠날 채비는 하고 있는가?”

폐하의 하명만 기다리고 있다 하옵니다.”

다윗은 눈을 감았다. 두통이 더 심해졌다. 지독한 고집이다. 아니 우직한 건지 멍청한 건지 분별이 되지 않았다. 어떻게 한다, 어떻게 한다?

우리아를 들라 해라.”

다윗은 시종에게 명하고는 침대에서 일어나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 계속 (매주 토요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박희주 작가 운암.jpg
박희주 작가

 1996년 등단한 후 첫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와 두 번째 시집 네페르타리를 발간하고 2005년 <월간문학>에 중편소설 내 마음속의 느티나무로 신인작품상을 수상하며 소설계 데뷔소설집으로 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 시대의 봉이』 『싹수가 노랗다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와 장편소설집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 『나무가 바람에 미쳐버리듯이가 있다. 2021년 제46회 한국소설문학상우수출판콘텐츠로 박희주 중편3이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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