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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16회

박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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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2.04.09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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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락의 나날을 보낸 압살롬에게 아히도벨이 찾아와 다윗과 그 무리들을 칠 계획을 내놓았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아히도벨은 다윗을 너무도 잘 알았다. 다윗과 함께 했을 때도 그의 전략은 한 치의 빈틈도 허락지 않았다.

다윗은 지쳐 있습니다. 따르는 무리도 많지 않거니와 사기도 떨어질 대로 떨어졌을 겁니다. 저에게 군사 일만이천 명만 주십시오. 이대로 뒤를 쫓으면 따라잡기 십상입니다. 많은 피를 볼 필요도 없습니다. 적들은 우리의 엄청난 힘만 보고도 지리멸렬, 감히 무서워 쥐구멍이라도 찾아 도망칠 게 뻔합니다. 이빨 빠진 호랑이는 어쩔 수 없이 저희들의 손에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아직도 그를 따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연스럽게 전하에게로 돌아올 것입니다. 다윗만 잡으면 됩니다.”

자신에 차있는 아히도벨의 말에 압살롬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하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압살롬은 더 신중을 기하기 위하여 다윗의 또 다른 책사였던 후새를 불렀다. 다윗을 아는 건 아무래도 아히도벨보다 후새가 한수 위라 생각되었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오. 아히도벨의 전략이?”

아히도벨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군요. 그는 다윗 왕을 이빨 빠진 호랑이라 하였으나 신은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분명히 이빨도 빠지고 곤경에 처해있는 건 사실이지만 전하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그는 용사 중의 용사입니다. 그 추종세력의 용맹함은 수가 적어졌다고는 하지만 명불허전이라 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곰이 새끼를 뺏긴 것같이 몹시 격분한 상태입니다. 쥐새끼도 도망갈 길을 놔두고 잡으라 했습니다. 막바지에 다다르면 아무리 쥐새끼일망정 고양이에게 달려들어 무는 법입니다. 우리가 수만 믿고 밀어붙인다면 그들은 물불 가리지 않고 죽기 살기로 덤벼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도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 합니다. 같은 이스라엘 백성끼리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다윗을 잡은들 우리의 국력은 형편없이 쪼그라지고, 누가 좋아 하겠습니까. 변방이 안정되었다고는 하나 그건 상대적입니다. 우리의 힘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만약 약해진다면 변방의 대적들이 가만있겠습니까? 또한 다윗의 많지 않은 군사로 우리 군사들의 많은 수가 쓰러진다면 백성들은 분명 동요할 것입니다. 패배를 모르는 다윗이라고. 골리앗을 쓰러트렸던 그 옛날을 회상하면서 여호와의 축복이 다윗 왕을 떠나지 않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 군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기가 떨어질 것은 물론 감히 나서서 싸울 생각을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날엔 전하께서도 끝장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오?”

압살롬의 얼굴은 굳어졌다. 이글거리는 다윗의 눈이 떠올랐다. 그 눈빛은 두려움 그 자체였다. 후새를 부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강해져야 합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르십시오. 그리곤 친히 전하께서 선두에 나서 정정당당하게 싸우십시오. 그들이 우리를 두려워하게 해야 합니다. 옴짝달싹 못하게. 하늘에서 내리는 이슬이 온 초원을 적시는 것과 같이 저희의 어마어마한 힘을 저들에게 보여주는 겁니다. 혹시라도 그가 어느 성에 숨어 꼼짝을 않는다 할지라도 동아줄로 그 성을 칭칭 감아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잡아당겨 무너뜨린다는 각오로 나서야 될 줄로 압니다. 온 이스라엘 백성이 합치지 않는다면 어려울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설령 이긴다할지라도 막대한 피해를 입을 게 분명합니다. 섣불리 나섰다간 큰 코 다치게 됩니다. 아무리 늙었다고 다윗을 절대 얕보지 마십시오.”

후새는 다윗에게 시간을 벌어줄 심산이었다. 아히도벨의 전략이라면 십중팔구 다윗이 질 게 뻔했다.

압살롬은 아히도벨의 말보다 후새의 신중한 말이 더 완벽하고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 했다. 후새는 눈앞의 이익보다 먼 훗날까지 내다보는 혜안을 가진 듯했다.

후새는 압살롬이 그의 말을 좇아 행할 걸 알고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에게 전후사정을 설명하고 신신당부했다.

다윗 왕께 전하시오. 오늘 밤 안으로 광야 나루터에서 요단강을 건너라고 말이오.”

사독과 아비아달은 자신들의 아들 아히마아스와 요나단를 불러 다윗에게 전하라고 말했다.

아히도벨은 절망했다. 자신은 충분히 다윗을 잡을 자신이 있었다. 후새의 전략은 말만 그럴 듯하지 어림도 없는 일일뿐 아니라 다윗에게 재무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압살롬이 자신의 계략을 따르지 않고 후새의 전략을 취한 건 하늘이 아직도 다윗을 돕고 있다는 증거였다. 압살롬의 천하는 거기까지라 보았다. 다윗의 명이 다하기에는 아직도 멀었다. 다윗은 위대하다. 사소한 실수와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와 견줄 수 있는 사람은 아직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일시적으로 백성들의 마음이 압살롬에게 쏠렸으나 언제 어느 때 다윗에게 다시 향할지 알 수 없는 게 변덕스러운 민심의 속성이었다. 앞날은 불을 보듯 뻔했다.

아히도벨은 나귀에 안장을 씌웠다. 자신이 압살롬에게 더 있어야 할 명분이 없었다. 다윗에게 갈 수는 없었다. 갈 길은 딱 하나. 죽음뿐. 허탈했다. 사탄에게 놀림 당한 기분. 고향으로 향했다. 그리곤 가산을 정리하고 스스로 목을 매어죽었다.

다윗과 함께 유랑의 길에 들어선 밧세바의 고통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린 아들들을 챙기는 것도 힘들었지만 자신의 할아버지가 압살롬의 책사라는데 심리적인 고통이 더 컸다. 어째서 할아버지는 다윗을 배신하고 압살롬에게 기대를 걸었을까. 이방인인 우리아와의 결혼을 반대한 할아버지였지만 막상 결혼하고 나서는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었다. 그런데 다윗을 알게 되고 우리아가 죽고 다윗의 처가 되어 살면서 할아버지를 볼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가 피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남편을 배신하고 간음한 손녀가 왕의 부인이 되었음에도 끝내 못마땅했던 것일까. 그런 할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단다. 율법에서도 큰 죄악으로 여기는 자살을. 내가 만약 다윗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내가 만약 욕심을 부리지 않았더라면, 내가 만약 정숙한 요조숙녀로 남았더라면 압살롬의 반란도 없었을 것이 아닌가. 할아버지가 압살롬의 편에 서지도 않았을 것이고 허망하게 목숨을 끊는 일도 없었을 것인데. 밧세바도 괴로웠다.

광야 나루터에서 후새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다윗은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을 맞아 상세한 얘기를 듣고는 부리나케 그를 따르는 무리들과 요단강을 건너 보다 안전한 마하나임에 이르니 생각지도 않았던 여러 무리들이 그를 환대하는 것이었다. 지치고 피곤한데다 몹시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른 그야말로 최악의 상태에서 뜻밖의 응원군이 가져온 꿀과 버터와 치즈와 양고기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여호와하나님의 선물이나 마찬가지였다. 노예 생활을 청산하고 이집트를 탈출하여 삭막한 광야를 헤맬 때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늘에서 내렸던 구원의 만나처럼. 그들은 배불리 먹고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다윗이 마하나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압살롬은 뒤늦게 요단강을 건너 길르앗 땅에 진을 쳤다.

다윗은 휴식을 취하는 중에 전열을 가다듬었다. 부족하나마 그를 따르는 백성들 가운데 백부장과 천부장을 세우고 군대장관 요압과 그의 동생 아비새와 블레셋 사람이지만 전에도 충성심이 강하고 지금도 변함없는 잇대에게 각각 삼분의 일씩 군사를 맡겨 지휘케 하고는 자신도 직접 전투에 나가 싸우리라 전의를 불태웠다. 그러나 신하들은 다윗이 친히 나가 싸우는 걸 한사코 말렸다.

폐하는 귀중한 몸입니다. 폐하가 곧 이스라엘입니다. 폐하가 계심으로 저희들이 있습니다. 만약 폐하께 위험한 일이 닥치게 된다면 저희들의 사기는 짚 검불을 태운 재처럼 사그라지고 말 것입니다. 부디 옥체를 안전한 곳에서 보존하고 계시옵소서.”

고마운 일이오. 정 그렇다면 그대들의 말에 따르리라. 그러나 간곡히 부탁할 말이 있소.”

부탁이라니 당치 않으십니다. 분부 내려 주시옵소서.”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다윗은 침통한 표정으로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나를 봐서라도 나의 못난 아들 압살롬을 부디 살려주시오. 그놈이 비록 잠시나마 눈이 뒤집히고 귀가 멀어 역적질을 하였으나 모두가 나의 부덕에 따른 것이오. 아비의 죄가 많아 그런 아들도 있나 봅니다. 그러니 불쌍하게 생각해 주길 바라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했습니다. 그게 바로 여호와하나님의 뜻이 아니겠소?”

그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다윗의 간절한 바람에도 그들이 숙인 얼굴에서는 어떤 표정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다윗은 무서웠다. 나단 선지자의 경고는 그의 마음속에 항상 도사리고 있었다. 그가 두 눈 벌겋게 뜨고 살아있는데도 많은 백성 앞에서 궁에 남겨둔 후궁들이 능욕을 당하지 않았는가. 그러한 압살롬의 패륜행위도 따지고 보면 자신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원죄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압살롬을 암암리에 조종하는 자, 그 보이지 않는 힘, 자신을 향한 여호와의 징계, 그게 무서웠다. 어찌 보면 압살롬도 희생물이었다. 섭리의 희생물. 업보의 희생물. 갈마의 희생물. 이제 압살롬의 패배와 죽음만 남았다. 다윗은 그걸 알았다. 그래서 괴로웠다. 아비가 아들을 죽여야 하고 아들이 아비를 죽여야만 하는 비극적 현실이 자신의 죄로 인한 잉태물이라니. 하늘. 여호와하나님. 온몸에 털이 곤두서도록 무서웠다. 내가 만약 여호와의 부르심을 받지 않은 평범한 양치기로서 살고 있었더라면, 밧세바와 간음만 없었더라면, 우리아만 죽이지 않았더라면, 암논만 제대로 징계했더라면, 압살롬이 헤브론으로 떠나는 걸 막았더라면, 이런 비극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만시지탄.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골육상쟁의 칼부림, 압살롬이 죽는 것까진 막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다윗의 군대와 압살롬의 군대가 드디어 에브라임 숲에서 맞붙어 격전을 치르기에 이르렀다. 다윗의 군사들은 수적으로는 열세였으나 지형을 잘 알고 전투경험이 많은데 비해 압살롬의 군사들은 숫자만 많았지 오합지졸이나 마찬가지였다. 또한 요단강 동편에 있는 에브라임 숲은 계곡이 불규칙하여 낭떠러지가 많고 늪이 수도 없이 많아 게릴라전을 벌이는 다윗 군사들에게 아주 유리했다. 게다가 다윗의 군대는 후새로 인하여 압살롬의 전략을 빤히 꿰뚫고 있었다. 따라서 압살롬의 군사는 월등하게 수적으로 우세함에도 불구하고 수풀 이곳저곳에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다윗 군사의 귀신같은 전략에 힘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지리멸렬하게 되었다. 칼에 찔려 죽은 수보다 지형에 익숙지 못하여 웅덩이에 빠져죽거나 절벽에서 떨어져 죽은 수가 더 많았는데 그 전투에서 죽어나간 수는 거의 이만에 이르렀다. 그런 상황에 기세등등하여 단번에 다윗 군사를 쳐부수려 선두에서 군사들을 지휘하던 압살롬은 당황하고 말았다. 타고 있던 노새도 당연히 허둥댔다.

너무 얕잡아봤다!”

그러나 때는 늦었다. 사방에서 다윗 군사들이 승승장구. 그는 서둘러 노새의 엉덩이에 채찍을 휘둘렀다. 우선 그 자리를 벗어나고자 했다. 놀란 노새는 벼락같이 앞으로 내달렸다. 투구가 벗겨지고 머리칼이 노새가 일으키는 바람에 휘날렸다. 얼마쯤 내달렸을까. 머리카락이 뽑히는 아픔이 느껴지는 찰나, 몸이 붕 뜨더니 압살롬의 용모를 한층 돋보이게 해주던 치렁치렁한 머리칼이 상수리나무가지에 걸리고 말았다. 노새는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내달리고. 그는 그대로 상수리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으니. 그 누가 알았으랴. 그의 그런 어처구니없는 최후를.

요압 수하에 있던 장수가 그걸 보고 요압에게 달려가 보고했다. 그러자 요압은 대노했다.

뭐라고! 그걸 보고 그냥 뒀단 말이야? 먼저 그놈을 죽이고 보고해도 늦지 않을 것을. 참으로 딱하구나. 네가 만약 그를 죽였더라면 내가 많은 상을 내렸을 터인데.”

그러나 그 장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저는 아무리 많은 상을 내리신다 할지라도 감히 폐하의 말씀을 거역하지 못했을 겁니다. 저는 폐하께서 장군께 한 압살롬을 죽이지 말아달라는 당부의 말씀을 알고 있습니다.”

뭐라? 이 괘씸한 놈. 그놈은 왕자라 할지라도 역적이니라. 어째서 아무런 죄도 없이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어가겠느냐. 다 그놈의 역적질 때문 아니냐. 역적의 말로는 바로 죽음뿐이니라. 그놈이 죽어야 많은 사람들이 산다. 아무리 폐하의 부탁이 있어도 그건 사사로운 정에 지나지 않으니. 그를 죽이지 않는다면 더 많은 피를 흘려야 한다는 걸 어찌 모르느냐. 우리가 죽을 수도 있다. 네가 죽고 내가 죽는단 말이다.”

그렇지만 내가 만약 그를 죽였다면 장군께서도 상을 내리기는커녕 어명을 어긴 죄로 저를 처벌하셨을 것입니다.”

오냐, 나는 긍휼보다 공의를 택할 것이니라.”

요압은 고집을 굽히지 않는 장수를 질책하고는 부하들을 이끌고 압살롬이 매달려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압살롬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나뭇가지에 매달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채 버둥거리고 있었다. 요압은 그런 압살롬에게 곧장 다가가 머뭇거리지도 않고 심장을 찌르고 머리카락을 잘라 땅에 떨어뜨렸다. 그러자 요압의 부하들이 달려들어 피로 범벅되어 꿈틀거리는 압살롬의 온몸을 난자하여 숨을 끊어놓았다. 그렇게 압살롬은 죽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것으로 반란은 끝나고 말았다. 압살롬의 시체는 구덩이에 처박히고 그 위로는 돌무더기가 쌓아졌다.

  - 계속 (매주 토요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박희주 작가 운암.jpg

박희주 작가

 1996년 등단한 후 첫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와 두 번째 시집 네페르타리를 발간하고 2005년 <월간문학>에 중편소설 내 마음속의 느티나무로 신인작품상을 수상하며 소설계 데뷔소설집으로 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 시대의 봉이』 『싹수가 노랗다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절벽과 절벽 사이를 흐르는 강』과 장편소설집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 『나무가 바람에 미쳐버리듯이가 있다. 2021년 제46회 한국소설문학상우수출판콘텐츠로 박희주 중편3이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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