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花), 악(噩)
정령
화(花), 악(噩)
정령
확 그냥 막 그냥 덮쳐버릴 테야.
물어보지도 않고 두드리지도 않고
불쑥, 함부로, 멋대로, 침묵을 건드렸어.
화악 마, 제대로 보여줄 테야.
물어보기 전에 두드리기 전에
대뜸, 볼쏙이, 무시로, 놀래줄 테야.
담장을 넘은 주홍빛 능소화가 지나던 차 소리에
화들짝 놀라 쳐다보면서 소리치고 있다.
噩!
⏐정령⏐
계간 ≪리토피아≫ 등단. 전국계간문예지작품상수상.
부천문협 회원, 부천여성문인협회회원, 아동복지교사
시집 『연꽃홍수』, 『크크라는 갑』, 『자자, 나비야』, 『구름이 꽃잎에게』
시작메모: 시를 쓰는 시인에게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감정을 가진 동물이다. 화를 낼 줄 모른다고 무시해서도 안 되고, 언제나 웃는다고 바보로 알고 경시해서도 안 된다. 사람이 가진 감정 중에 희노애락(喜怒愛樂)의 감정을 부끄러워서, 혹은 쑥스러워서 감추는 사람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얼굴에는 수 백 개의 근육들이 웃을 때나 슬플 때나 화날 때 나오게 되는 갖가지 표정들을 감출 수가 없게 이루어진 얼굴이라고 한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웃고 울고 화를 내야 건강한 사람이 된다. 필자도 화를 잘 내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화가 나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감정을 길가에 핀 능소화를 빌려서 소리치고 있는 것이다. 위의 시도 화난 듯이 소리치며 읽어보라. 괜히 웃음이 나며 그 순간 화냈던 일이 가라앉는 쾌감을 맛보게 된다. - 시인 정령